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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면 우리는 늘 몇 가지 결심을 한다. ‘운동을 해야지’, ‘악기를 배워야지’, 또는 ‘공부를 해야지’. 그러나 결심이 결심으로만 끝나는 것은 흥미 없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많은 사우들이 통찰력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한 목표를 세웠을 것이다. 디자인 책, 기술 서적, 그리고 업계를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도서들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겠지만 읽기 시작하는 데에는 상당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가벼운 소설 한 편을 소개한다. 이 책은 IT 업계의 대가들이 강력히 추천하는 작품이면서도 흥미를 잃을 필요가 전혀 없는 비 IT 서적이기 때문이다. 새해 결심의 첫 단추를 수월하게 끼우고 작심일년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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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소개할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저자인 루이스 캐럴이 1월 27일에 태어나고 1월 14일에 세상을 떠나 1월과 연관이 깊다는 이유(2009년 1월 14일이 그의 111 주기이다)도 있지만, 이 책에는 사람의 통찰력을 키워주는 좋은 요소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정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갈증과 활력으로 가득 차게 마련이다. 그런 목적을 부담 없이 충족시켜 주기엔 어른들을 위한 동화만큼 좋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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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이 단지 동화인 것만은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동화책인 동시에 IT 업계에서 가장 추천되는 책이다. 최초의 튜링상 수상자인 앨런 펄리스는 일반인을 위한 전산 서적으로 앨리스를 꼽았고, IT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컨설턴트였던 제럴드 와인버그는 심지어 IBM의 교육 과정에서 이 책을 교재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지식 산업인 IT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우리의 세계를 비꼬아 보는 관점과 다른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편안히 소설을 읽으면서 알찬 새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고 굳게 믿어도 무방하다.

도대체 이 책의 어떤 면이 찬사를 이끌어 낸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지적 유희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아도 아무 부족함 없이 충분히 즐겁다. 하지만 이 책은 논리학, 철학, 사회학 전반에 걸친 통찰력 있는 교과서로 읽을 수도 있다. 책을 덮을 때 머릿속에서는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은 듯 하지만 (어쩌면 더 복잡해져 있을 수도 있지만) 삶에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일에서는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제보다 더 자유로워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지에 관해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 속에 그들은 이미 비정상이므로 행동에 이유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코끼리가 어릴 적부터 묶고 있던 밧줄처럼 우리의 통찰력을 좁고 느린 공간 안에 매어둔다. 업무를 통해 롱테일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접하지만 그것의 실체를 느껴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롱테일은 일반적이거나 평범하지 않은 대규모의 비정상 집합을 말한다. 그리고 정상적인 우리는 여전히 발 묶인 코끼리인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통해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앨리스가 흰토끼를 쫓듯이 호기심 많은 독자가 되어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따라 들어가면 좀 더 다양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 평범하지 않다고(Uncommon) 비정상(Abnormal)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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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정원사인 spade(삽) 2, 5, 7은 실수로 잘못 심은 흰 장미에 빨간색 페인트 칠을 한다. 단지 여왕이 빨간 장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흰 장미 한 송이를 남겨두고 발각되어 처형을 명받는다. 여왕의 행동에도 정원사들의 행동에도 아무 마땅한 타당성이 없지만, 여왕이 처형을 남발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고 정원사들의 비정상적인 업무를 납득할 수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여왕이 될 수도 있고 정원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앨리스는 우리가 여왕 또는 정원사처럼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찰할 기회를 준다.

이 책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줄거리와 무관하게 난무하는 논리 퍼즐과 언어 유희이다. 번역서로는 느낄 수 없는 말장난의 한계가 아쉽지만 이상한 나라 속의 지적 유희는 명실공히 최고이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주석이 달린 앨리스를 통해 얼마든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일례로 저자가 책 속에서 만들어낸 Doublet이라는 놀이가 있다. Doublet은 사전에 존재하는 단어만을 이용해 한 글자씩 치환하면서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는 게임이다. cold를 cold-cord-card-ward-warm의 과정을 거쳐 warm으로 바꾸는 것이다. 비슷하게 love가 kiss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5단계가 필요하다. 이것은 전산언어학과도 관련이 있어 두 단어 사이에 발음상의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이렇듯 이 책의 말장난은 언어적(그리고 논리적) 지능을 한껏 일깨우며 독자에게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을 준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과는 달리 지금 읽는 앨리스는 독자에게 또 다른 언어 감각을 형성시켜줄 것이다.

SF 영화인 ‘매트릭스’가 철학적이라는 평을 받았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그에 못 미칠 이유가 전혀 없다. 비이성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유일하게 정상인인 앨리스가 그들과 함께 미치지 않고서도 얼마나 자연스럽게 융화되는지를 들여다보자. 그리고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사회도 한 번 고찰해 보자. 앨리스처럼 예의 바르고 당당하게 이상한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통찰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 그림 출처
표지 : http://dodongbook.com/
삽화 : http://www.alice-in-wonder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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