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논술 시험 1번 문제에서 3700장 가량의 답안 중 약 2000장에 달하는 글이, 판에 박은 듯한 내용을 적어낸 것이었다고 한다. (욕설마저도 제 각각인 인터넷 댓글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에 대학측 입시 담당자들은 획일적을 글을 적어낸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이로써 논술 학원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효과를 보겠다고 한다.
그래, 매우 좋다. 머릿속 생각일지라도 역시나 펌질은 불법이다. 어느 학교에서는 레포트 중복 검사기도 만들어 쓰는데 하물며 논술임에야..
매우 바람직하다.

허나 이러한 기준이 경고 한번 받지 못한 올해의 학생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그 학생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학원에 잘못 다닌 죄만으로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1년이라는 긴 시간이 달린 대입에서 말이다.

물론, (돈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첫번째 조건이 되는) 한국의 입시 문화를 경멸하는 나의 시각에서, 일면 마음에 흡족한 결과이기는 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안의 결과가.. 이렇게 말하면 안되는 것이겠지만.. 굉장히 통쾌하다.)

그러나!
이건 누가 뭐래도 출제자인 대학측의 잘못이다.
논술 학원이 대부분의 학생들로부터 뻔한 논조를 이끌어내고 있었다는 것부터가, 대학측에서 뻔한 논술 문제를 내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과 같은 답안에 그간 대학측에서 점수를 가장 잘 주어왔으니, 점수를 목적으로 삼는 학원이라는 곳에서 그렇게 가르친 것 아닌가.

우리의 논술 문제는 획일적인 답이 나오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주제의 것들 뿐이다. 논술 문항의 출제 자체가 획일적이고 형식적인데 답안을 쓰는 학생들이 어떻게 자유로운 글을 쓰겠느냔 말이다.

게다가 '논술 학원의 답안을 맹신하면 점수를 주지 않겠소'라고 미리 일러두고 시험을 치른 것도 아니고, 결과가 이 지경이 되고나니 이제서야 부랴부랴 점수를 깎는 모습을 보이다니, 이래서는 곤란하다.

내년부터 강남 논술 학원의 예상 문제는 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하고, 논술 학원의 논지를 따르는 글은 점수를 주지 않겠다고도 하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해의 학생들에게는 그럴 수 없다.
그들을 본보기 삼아, 희생양 삼아, 사회를 조율하겠다는 것인가.. (이런것은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효시가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획일적인 논술 문제밖에 못 만들어내는 교수들을 다그쳐야 마땅하다.

그리고 덧붙여,
내년부터는 논술 문항 뿐만 아니라, 수능에서 면접까지 모든 면에 있어서 강남의 과외와 학원의 효과를 배제시킬 수 있도록 애써주기 바란다.

학자는 자질로 만들어지고, 학생은 노력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돈으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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