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외로워서 심심하다.'

심심함은 혼자 있거나 할 것이 없어서 느껴지는 것이라
외롭다..라는 감정과 중첩되어 나타난다.

요즘의 웹 서비스는 심심함을 타파하고자 무던히 애를 쓴다.
그러나 이 심심함의 본질은 외로움에 있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강한 자극과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재미있는 동안은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기 떄문이다.
즉, 현대인은 외롭기 때문에 심심하다.

성공한 웹 서비스의 속성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외로움에 연관되어 왔다.
이를 논하기 전에 웹 서비스의 흐름부터 알아보자.

1. PC 통신의 BBS, 채팅, 동호회

웹 서비스가 생겨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그 속성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PC 통신이다.

BBS는 게시판 서비스로 웹 서비스의 전신이자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곳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열심히 글을 썼고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반응을 보여주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표현하고 글솜씨를 뽐내고 글을 읽어주는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인터넷의 유희적 목적이었다.

PC 통신의 채팅은 지금의 채팅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번개라는 용어는 이미 이때 만들어진 것이며 채팅 문화는 오히려 이 시기에 더 많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때의 채팅 목적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PC 통신 시절의 동호회는 지금의 카페나 클럽과 동일한 서비스이다.
실제로 현재의 거의 모든 웹 서비스 개념은 실제로 PC 통신 시절에 이미 확립된 것이다.

PC 통신 시절의 BBS와 채팅, 동호회는 교류하고 공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이 역시 화두는 외로움이다.

현재의 웹 서비스와 PC 통신을 비교하자면,
요즘의 술집에서 주고받는 대화와 옛 대학가의 술집에서 나누던 대화의 차이로 비유할 수 있겠다.
주고받는 대화의 무게는 다르지만 어쨌든 결국엔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이들은 컴퓨터 앞에서 사람을 느끼고 싶어했다.

2. HTTP 의 시작

태초의 웹 서비스는 특정 정보나 자기 소개를 올려놓은 단순한 홈페이지에 불과했다.
이때는 PC 통신의 BBS 와 완전히 동일한 목적으로 웹 페이지가 만들어졌고 응용되지 않은 웹 서비스만 존재했다.
따라서 이때의 목적도 PC 통신 시절과 다르지 않다.
다만 인터넷을 사용하는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좀 더 나은 정보와 좀 더 많은 재미를 가미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사람을 느끼고 싶어하는 속성이 조금 감쇠하는 시기이다.
이때는 가치있는 정보의 축적과 활용이 모든 사람의 관심사였고
현재의 웹 서비스처럼 엔터테인먼트에 치중해 있지는 않았다.
시대적 분위기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더 컴퓨터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싶어했다.

3-1. 발전된 웹 서비스 단계

이전의 단계까지는 웹을 서비스라는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웹을 산업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웹에 서비스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인터넷은 좀 더 사람을 대하고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발전했다.
덕분에 다시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서 기계가 아닌 사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때 성공을 이끈 서비스가 채팅 서비스이다.
PC 통신 시절의 채팅을 그대로 옮겨 온 웹 채팅 서비스는
사람을 느끼는 재미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성공적인 웹 서비스의 속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컴퓨터를 통해 사람을 느끼는 재미'를 제공하는 웹 서비스가 계속해서 성공하기 시작했다.

세이클럽, 다음 카페, 아이러브스쿨 등
초기 단계의 웹 서비스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3-2. 곁가지, 삼천포

3-1 의 시기에 '외로움'이 아닌 다른 모티브가 영향을 미친 경우도 있다.
초기의 웹 서비스들이 좀 더 산업적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나'와 '스타'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나(I, me, myself)'라는 모티브가 매우 강한 이미지를 나타냈다.
덕분에 나를 표현하고 내세우기 위한 홈페이지 제공 서비스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또한 아이돌 스타 때문에 팬클럽이 매우 왕성하여 연예인 홈페이지와 팬클럽 카페가 난무했다.
이렇게 '나'와 '스타'라는 모티브는 이 시기 웹 서비스의 발전에 매우 큰 도움을 줬다.

특히, '나'를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던 세대에서 '나'를 알리고 싶어하는 세대로
급격히 문화가 변했다는 것이 웹 서비스의 산업적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맞물린 웹 서비스 산업의 사건은
수많은 업체에서 HTML 을 모르고도 제공하는 프레임만으로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이런류 서비스를 제공한 가장 유명한 업체는 Tripod(라이코스)였다.
그리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람들은 홈페이지를 가볍게 만드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 사건은 웹 서비스 발전 단계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아마 이 시기에 캐쥬얼 홈페이지가 대중화되지 않았다면 싸이월드의 기획자들이 미니홈피를 애당초 떠올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다음 카페가 성공이 가능했던 이유도 붕어빵을 찍어내듯 만들 수 있는 커뮤니티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이런류의 서비스에서 가장 힘을 가졌던 것은 프리첼이었지만
유료화를 통한 실패라는 매우 큰 사건을 남기고 지금은 전혀 다른 업체가 되어 있다.

4. 시스템화 된 웹 서비스

앞서의 초기 단계를 거치고 웹 서비스는 좀 더 체계화 되고 조직화 된다.
이전까지는 사용자들의 이용 행태를 기획자들이 제어하지 못했다.
그저 PC 통신 시절의 기능을 웹 서비스로 옮겨 오는 것이 아니면
홈페이지나 커뮤니티를 만드는 도구만 제공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아이러니 하게도 사용자의 의도를 기획자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자가 의도한 서비스 사용 방식을 사용자들이 인지해서 따라가게 된다.

싸이월드가 이런류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성공한 서비스이다.
(나는 아직도 도대체 싸이월드에 어떤 기능이 구성되어 있는지 다 모른다.
이건 기획자의 의도를 사용자가 분석해야만 제대로 쓸 수 있는 서비스이다. -.-
그러나 싸이월드는 일반적인 웹 서비스가 아닌 싸이월드 내에서만 통용되는 시스템을
존재하게 만들어 체계화시켰기 때문에 사용자들 사이에 문화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근원적인 성공 요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매우 효과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외로움'이라는 것은 '재미'라는 요소에 숨어 내재화 되었다.
(안타깝게도 웹 서비스 제작자에게 인지되지 못하지만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성공한 웹 서비스의 속성이 '외로움'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실생활에서 느끼는 군중속의 고독을 컴퓨터 앞에서 해결하는 문화 때문이다.
인터넷 안에서는 좀 더 시스템화된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간적인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대신 웹 서비스의 설계자가 만든 단순하게 정해진 규칙만을 지키면 되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게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다.
(이를테면 방명록만 잘 써주고 1촌 관리만 잘하면 굉장히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동안에는 술자리에서와 유사한 즐거움을 얻는다.
술은 좋아하지 않지만 술자리는 좋다는 사람이 많다. '사람을 느끼는 즐거움'에 대한 표현이다.
술자리에서는 엉겨붙어 형,동생 하며 놀다가 다음날이 되면 또 다시 원래의 선,후배나 직장 동료가 되는 경우를 겪어 본적이 있는가.
이것이 곧 웹 서비스에서의 '외로움' 회피이다.

어찌되었든 웹 서비스 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외로움이 줄고 즐거움이 는다.
실생활로 돌아가면 (가상적인) 사람 느낌은 사라지겠지만 웹 서비스에 들어오면 곧 다시 그 인간관계를 얻을 수 있다.
대학생이 술자리에 계속해서 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웹 서비스를 계속 해서 이용한다면
그 서비스는 아마 내재적으로 '외로움'의 모티브를 담고 있을 것이다.
보통은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때 '재미있다'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재미'가 웹 서비스의 제 1 요소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5. 웹 2.0

'웹 2.0' 은 마케팅 용어라고 인식되며
설명하는 사람마다 다 다른 내용을 말하는 난감한 표현이지만
그래도 이제 시간이 좀 흘러 웹 2.0 하면 보통은 SNS 로 귀결된다.
어느 정도는 웹 2.0 의 분위기가 정리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SNS 라면 결국 '사람'을 느끼기를 원하는 초기의 웹 서비스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웹은 시기가 지날수록 점점 더 '사람 느낌'을 원하는 듯이 보인다.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은
사용자들이 쓸쓸해서 견딜 수 없어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니다.
컴퓨터 앞에서 사람과 교류하고 싶어하는 사용자의 욕구를 키워드화 한 것이다.

폐인이라고 부르는 컴퓨터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로움에 휩싸여 있다.
공식적인 인간관계에만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 또한 외로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웹 서비스 사용자들도
'외로움'을 떨치기 위한 인간관계와 교류를 계속하여 추구하고 있다.

천천히 살펴보면 우리가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대부분의 웹 서비스는
그 이용하는 재미가 바로 나를 봐주는 '사람'에게 있다.

그리고 웹 서비스를 이용할 때 표면적으로는 재미를 추구할지 몰라도
내재적으로는 교류하고(외롭지 않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기해달 보노보노는 외로울 때 심심하다..)

당신은 블로그에 글을 쓸 때가 더 재미있는가 댓글을 주고 받을때가 더 재미있는가.
PC 게임이 더 재미있는가 네트워크 게임이 더 재미있는가.
방문자 수가 늘었을 때 당신은 우스워서 웃는가 만족해서 웃는가.
SNS의 요소에 '평판'이라는 것이 있다.
당신은 두사람에게 50점씩 받는 것이 좋은가 50명에게 2점씩 받는 것이 좋은가.
당신이 받는 평판 점수는 똑같이 100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자를 일촌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유명 블로거라고 부른다.

웹 서비스의 재미는 인간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한 현대인의 '외로움'과 연관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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