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으로 가득한 내 서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는 꿈이다
나도 어릴 적 나만의 서재를 갖는 상상을 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책 만큼은 유난히 좋아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내 서가를 꼭 꾸미리라 다짐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책이 싫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내 서가를 갖는 환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책을 읽고 싶은 욕심보다 갖고 싶은 욕심이 더 컸던 모양이다
벽을 타고 끝없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책들에 대한 상상을 하다 문득
책의 내용은 책장 안에 갇혀 있고 겉표지 제목만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가에 대한 나의 환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책들이 진열되는 대형서점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오랜만에 펼친 책의 습한 냄새와 누렇게 바랜 종이가 멋으로 보여지기 위해서는
정말 그 책이 오랜만에 펼친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책장에 꽂아만 두고 한번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라면
어느 페이지인가는 충분히 발효되고 나서야 나를 처음 만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 책이라면 벽면을 장식하는 벽지나 다름이 없다
 
차라리 그런 용도의 책이라면 하얀 속살을 가진 새 책 쪽이 더 좋아 보인다
그래서 나는 조금 귀찮더라도 읽을 책은 대형 서점에 직접 가서 찾을 테다
서가를 꾸미는 비용이라면 차비를 빼고도 오가는 동안의 간식거리를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책은 꼭 다 보고 나서야 책장에 꽂아 놓는다
그런데 이래 가지고서야 책으로 가득한 서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다 본 책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서가에 대한 꿈은 접었다
언제나 새 책으로 가득한 서가가 가능하다면 모를까
지금은 차라리 책을 맘 놓고 읽을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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