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컴퓨터를 사용한지 벌써 15년이 넘었으니,
컴퓨터 통신이라는 경험도 12년은 족히 된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시작한 일이니 내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요즘의 어린(또한 어리지 않으면서도 나이값 못하는) 유저(User)들에게는
한없이 유감이다
 
일례로 '초딩 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문화라고 하기에는 기껏해야 취미생활로 즐기는 한심한 작태에 지나지 않는 양식이다
말하자면 음주가무에 버금가는 유흥 문화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뭐, 문화라면 문화는 맞는 모양이다
 
그 중, '말 변형해 쓰기'라는 해괴한 시민운동이 있다
운동이라기보다는 가히 혁명적이다
 
'옛날'이라 표현되는, 점잖은 PC통신 시대에도 말을 변형하는 문화는 있었으나
그 때는 말 그대로 말을 줄여 통신요금을 절감하기 위함이었다
 
인터넷의 언어 파괴는 글을 줄여 씀을 지향한다고 하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요는, 말을 가볍게 하기 위함이다
 
초기의 컴퓨터 통신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기 때문에
웬만큼 수준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즐길 수가 없었다
즉, 지적 소양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네트워크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 분위기라는 것도 지금의 인터넷과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 마흔이 훌쩍 넘은 회사원이 중학생에게까지 '님'자를 붙여가며 깍듯이 존대를 했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대개는 오프라인 모임에까지도 그 존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고속의 회선이 보급되고 인터넷이라는 것이 '견우가 함께 하는' 것이 되고 만 터라
그 쓰임이 통신 요금만큼이나 가벼워진 게 사실이다
(실제로 예전엔 모뎀이라는 것을 사용해, 쓰는 시간만큼 막대한 요금이 나왔으므로 통신 중에 헛소리 따위는 할래야 할 수도 없었다)
 
인터넷의 가벼운 작태를 몸소 느끼는 것이,
PC통신 시절에는 막대한 전화요금을 감당하면서도 할 일이 그리 많았는데
인터넷의 쓰임이 이리도 다양해진 지금에 와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도
'뭘 할까'를 연신 되뇌이고 있지 않은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 중독된 많은 중생들이 이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 '가벼운' 문화는 이미 모든 문화를 잠식해,
인류를 처음으로 인간답게 만든 '언어'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혹시나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네티즌이 있을지 모르니, 하나 묻자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아는가
역사란 글로 기술되어 전해진 인간의 정신을 말한다
그러나 '정신 없이' 바쁜 사회에, 인터넷에서는 정말로 '정신'이 없게 되어 버렸다
 
가장 큰 문제는 존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도 '(오빠 또는 동생 하면서) 편하게 말 놓자' 하는 시대가 되기는 했지만,
인터넷에서는 실로 그 분위기마저 다르다
 
말을 줄임으로써 (통신 비용뿐만 아니라 타자를 치기 위한 노동력까지도 포함하여)
비용을 감소시키고자 했던 예전의 문화에 비해,
 
요즘은,
남을 조롱하거나 비하하기 위해,
또는 게시판의 욕설 여과 기능을 피해 가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뭔가 다른 독특한 사람인 첫 행동하기 위해
언어를 파괴한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말을 못하는 모습은 못 배운 행태로 치부해 버리면 될 일이나,
때로는 (겉으로는) 정중한 토론방에서도 유사한 언어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그 쪽의 분위기는 조금 더 특이한 편이다
아마도 현대 사회에서 남을 무시하는 방법은 죄다 반영하지 않았나 싶다
 
가장 독특하면서도 이제는 흔한 것이 되어버린 문화는 '하오체'이다
국어 시간에나 잠깐 배운 것이지만 모두들 즐겨 쓴다
(그러나 정확한 어법으로 쓰지는 못 하는 듯 하다)
 
실제로 이것은 남을 하대하지 않는 척 하면서
또한 존대도 하지 않는 무척이나 '현대적인' 어투이다
사실 네티즌이라는 종족은 뱃속 깊이에서부터 남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요만큼도 없다
 
그런데 이것이 점점 더 그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은 서로간의 묵인에 기인한다
모두들 이것을 하나의 '문화'라고 여기고 있는(싶은) 것이다
 
한편 객관적으로 뒤집어 보면, 그 뒷면에는 네티즌의 회피성향만이 있다
내가 존중받지 못 하더라도 남은 결코 존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일까?
(물론 좀 커다란 과장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인터넷은 놀이공간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현실에서는 마치 나이트에서 밤새 실컷 놀고 나온 요조숙녀 같다
 
네티즌은 '거울'쯤 되는 듯 싶다
'거울'은 시어로 쓰여도 나쁜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거울은 아무리 들여다 봐야 자신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이상'은 성찰의 의미로 거울을 사용했다나,
그러나 자기 본위의 네티즌에겐 눈 가리고 아웅이 더 맞다)
 
나는 그냥,
투명한 '유리'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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