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로 가기 위해 걷다 또 걷다 한없이 걷다가
지쳐서 고개를 들어보니 해가 중천이다. 점심시간이다.
밥을 어쩔까 계속 고민했는데 마침 눈 앞에 사찰음식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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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음식점 향적원.


안으로 들어가자 모든 행동이 매우 여유로운 두 분이 우리를 맞았다.
음악이며 속도며 모든게 사찰음식전문점답다.

우리는 만원짜리 정식을 주문했다. 그러니까 2인분에 2만원.
비빔밥 치고는 비싼데 정식이니까 이것저것 더 나오겠지.
사찰음식이니 고기는 절대 섞여있지 않을 것이다.
아 궁금하고 배고프다.

아직까지 손님은 우리 둘 뿐이다.
밥 먹을 때 뒤로 누군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나에겐 매우 좋다.
우리는 손을 닦고 정갈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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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티슈도 명품이다.


주인 내외분은 매우 느릿느릿 여유롭게 움직인다.
요리도 사람이 오면 그때부터 시작하는 모양이다. 뭔가 웰빙스럽다.
아니지. 여기 표현으로는 웰비잉스럽다. (매우 발음이 정확한 가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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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히 앉아있으니 조금 후 에피타이저가 나온다. 와 샐러드는 이국적인 걸.
그런데 절에서도 샐러드를 먹나. 아무렴 어때.
어느 나라 스타일이건 난 채소는 다 좋다.
대추 고명이 뿌려져 나오고 복숭아와 자두가 들어있다.

근데 샐러드치고는 조금 미지근하다.
아하! 실온에서 보관하는구나. 오래된 재료는 아니겠군.
여리형과 나는 웰비잉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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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다 먹어 갈 즈음 감자전이 나왔다. 이게 또 상당히 맛이 좋다.
그러나 허겁지겁 먹을 수는 없었다.
여리형이 법정 스님의 말씀을 계속 읊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먹어라.
봄에서 한여름 가을까지 그 여러 날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 아닌가.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움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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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여리형은 맛깔나게 억양을 잘 조절했다.


여리형이 이 음식점을 서울에 차리면 참 좋겠다며 계속 아쉬워했다.
그러나 여긴 서울의 음식점과 다른 (매우 중요한) 점이 하나 있었다.
시골길 위에 덩그러니 자리잡은 식당이다 보니 주위가 다 텃밭이다.
채소를 직접 키워서 쓰는 게다. 아! 이곳에서만 가능한 이유가 있구나.
여리형의 아쉬움이 나에게도 전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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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은 정식. 만원치고는 꽤 잘 나온다.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
숟가락을 쓰면 밥이 눌려 맛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사실 밥이 눌려도 맛은 그대로다.
진짜 이유는 비빔밥의 주재료가 나물이라는데 있다.
나물은 국수와는 달리 서로 엉키므로 젓가락을 써야 골고루 섞어 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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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정성스럽게 비볐다.
아 맛이 매우 좋다. 나물이 싱싱한 모양이다.
쌈채소도 크기가 작고 벌레먹은 자국이 많다. 정말 좋은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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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도 맛이 좋다.
우선 조미료가 안 느껴져 좋고 맛 자체도 자극적이지 않다.
심심한 반찬을 한 입 물고 된장찌개를 떠 먹으니 입안도 개운하고 딱 좋다.

이렇게 우리는 배부르게 잘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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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밥은 남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절에서 먹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찰음식점이라니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먹어야겠지.
"사람이 아닌 거여"라면 아니되지 않나. ^^
이렇게 마음도 정갈해지면 좋으니까.
하여 우리는 그릇을 싹싹 비우고 나왔다.

한참 더 가야해서 당장 이를 닦을 수는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입안이 텁텁하지 않았다.
한식을 먹었는데. 커피도 안 마셨는데. 회사 앞 식당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담백한 음식이라 조미료가 입 안에 달라붙지 않아 그런가보다.

아 잘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불국사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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