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
평일인데도 이 밤중에 부산까지 가는 사람이 꽤 있네.
근데 이 기차엔 딸아들이 와이리 많노. 와 분위기 밝아 삐고~ ^^

여리형은 옆에서 엄청 잔다.
도대체 어떻게 원하는 순간 찰나의 지체도 없이 무조건 잠들 수가 있는 거지.
자신에게만 통하는 최면술이라도 배운 것일까.
아 나도 피곤한데 이제 눈 좀 붙여야지..

경주 여행 내용을 정리하느라 잠을 좀 참았더니 몸이 무척이나 피곤하고 머리가 무겁다.
근데 이럴수록 잠이 더 안온다.
히어로즈의 피터처럼 능력을 흡수할 수 있다면 난 지금 여리형의 잠 능력을 흡수했을 것이다.
나도 잠에는 남 못지 않은 사람이지만 오래 자는 능력일 뿐이지 잠드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
아 자고 싶다.

한 10분쯤 잤을까..
함께 승차한 아리따운 여아들은 울산에서 모두 내렸다.
그리고 난 울산에서 잠이 깼다. -.-
여리형도 같이 깨어났지만 그가 잔 시간은 결코 적지 않다.

여리형이 갑자기 창밖을 보라고 한다.
낮에 왔으면 매우 멋진 절경이 펼쳐졌을 거라고 설명해 준다. 젝일. 하나도 안보여.
그래도 이제 부산이다. 기차로는 한국의 끝이구나. 이제 승객이 별로 없다.
우리는 쓸쓸히 부산땅을 밟을 준비를 했다.

방송에서 해운대역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우리가 내릴 곳은 다음 역인 부전역.
허나 일찍 내리는 건 문제 없으니 해운대나 볼 양으로 한개의 역을 미리 내리기로 했다.
아아 부산에 발을 딛는다아아아. 감격이다. 그런데 그 순간.
"케이군 비 온다!!"
후다닥 우리는 다시 기차에 올랐다. 으흐.
우린 우산이 없고 지금 해운대에 내리면 낭패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원래의 목적지인 부전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금 후 저벅저벅 걸어오는 역무원 아저씨.
사투리를 친절한 억양으로 구사하는 경상도 아저씨다.
"고객님 해운대역에서 내렸다가 다시 탔지요?"   "아 예.."
어휴. 우리가 내렸다 후다닥 다시 타니
뭘 두고 내렸는가 싶어서 출발하던 기차를 세웠었단다.
으 이런 민폐가.. 우리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헤헤 웃었다.
모르는 척. 별 일 아닌 척. 쪽 팔리면 지는 거다. 훗.
으.. 젝일. 그래 맞다. 우리가 졌다.
역무원 아저씨 죄송합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
우리는 이렇게 부산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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