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관심이 많은 성향 탓에 아이디어 회의 따위에 자주 참여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성과물에 대한 계산법이 나와 좀 다른 것 같다.

가만보니 다른 사람들의 계산법은 이렇다.
원가가 100원인 컨셉을 계획한다고 했을 때, 300원의 결과물이 나오면 사람들이 만족한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고 하자. 그럼 이 회의에서는 컨셉이 301원의 값어치를 만들어 낼 때부터 "좋은 생각이야"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내 계산법은 조금 다르다.
100원의 원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컨셉이 10가지라고 하자. 첫번째 컨셉은 100원의 가치를 이끌어 내고, 두번째 컨셉은 200원, 그리고 열번째 컨셉은 천원의 값어치를 갖는다.
그럼 이 프로젝트의 평균 가치는 550원이다. 즉 원가가 100원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안했을 때 100원이라는 뜻이고, 어떤 행동이든 시작했다면 그 행동의 평균 가치가 550원을 넘어야 좋은 결과라고 평할 수 있는 것이다.
300원의 가치만으로 사람들이 만족한다 치더라도 300원에서 550원 사이의 결과물은 그냥 부가가치의 생산이지 좋은 컨셉이 아니다. 원가를 넘어서니 실패는 아니지만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아이디어'일 뿐.
우리가 머리를 썼다고 볼 수 있는 단계는 551원을 만들어 낼 때부터이다.

주로 여기서 나와 다른 사람들 간에 의견 불일치가 발생한다. 대부분 내가 참여하는 회의는 사업 회의가 아니기 때문에 300원에서 550원 사이의 컨셉만 얻어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거의 ROI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역할의 사람들이고 회의 또한 그런 성향의 회의이다. 말하자면 비용을 회수할 필요가 없이 쓰기만 하면 되는 그런 비사업적인 회의인 게다.

허나 난 성향적으로 그런 결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공돌이인데다 INTP 성격 유형을 갖고 있어서 최적을 산출해서 행동하지 못하면 만족스럽지가 않다. 주로 700원 정도로 예측되는 컨셉을 시행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뭔가가 떨어져 나가 600원의 가치를 얻으면 그때쯤 만족한다. 301원의 컨셉을 열심히 달성해 원가보다 201원을 더 얻었으니 만족한다는 것이 내게는 좀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내 의견을 반영시키지 않고 시키는대로만 하는 편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시행하지 않아야 원가대비 201원의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를 한다면 550원 이상을 얻지 못하면 견디질 못하니까.

물론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다를 수 있다. 동아리에서 일일 주점을 여는 정도야 사실 뭘하든 상관이 없다. 심지어 적자 좀 난다한들 어떤가. 재밌게 놀기 위해 지불한 비용인데 알바 좀 해서 메우면 되지. 그러나 공모전 컨셉 회의만 되어도 경우가 매우 다르다. 상당수의 대학생이 공모전에 참가에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경험도 쌓이니 밑져야 본전이고 잘되면 좋다는 식으로 생각없이 공모전에 임하지만 이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밑져서 본전일리가 없다 밑지면 분명 손해다. 그들은 자신의 깨끗한 뇌를 걸고 게임에 임하는 것이다. 차라리 백지가 낫지 낙서가 된 캔버스엔 그림을 그리기가 매우 어렵다. 잘못된 발상 경험을 대학때 쌓기 시작하면 평생 아이디어를 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첫직장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잘 새겨 볼 일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발상과 창의력을 종용한다. 허나 십대 시절 내내 암기를 강요받다가 겨우 대학에 들어왔는데 여전히 성적이니 토익이니 하는 벽에 갇혀 있는 이들이다. 단지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강요때문에 창발적인 사람이 되려고 여기저기 뛰어보지만 그게 그리 쉬울리가 없다. 결국 그들이 내는 아이디어는 550원에 못미치는 컨셉이지만 사회는 그들을 독려하기 위해 계속 박수를 쳐주는 이상한 악순환만 남을 뿐이다.

지금 사회에 나와 있는 사람은 어떨까. 자신도 대학 시절 저런 길을 거친 이가 아닌지 되새겨보자.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컨셉 회의가 어떤 값어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도 좋겠다. 회의 참여자 모두가 합의했다고 좋은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모든 경우에 대해서 예상가능한 가치를 전부 계산했다는 확신이 서면 그때 컨셉을 정리하고 박수를 치자.

내가 지금 당장 참여하고 있는 회의도 누군가의 비용에 의한 것일 게다. 회의 참여자 이외에도 연관된 모든 사람의 비용을 다 계산해보자. 물건을 팔기 위한 회의라면 소비자의 이익까지도 계산에 넣자. 다음과 같은 경우 무얼 택하겠는가.
원가 100원의 물건을 200원의 가치로 만들어 150원에 판다면 10개를 팔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물건을 300원의 가치로 만들어 200원에 판다면 5개가 팔린다.

어느 쪽을 택하든 우린 500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후자일때 두배의 부가가치를 얻는다. 이게 저가형 브랜드와 고급형 브랜드를 결정하기 위한 조건이며 동시에 당신이 301원짜리 컨셉으로 만족하면 안되는 이유이다.

어떤가. 당신은 아이디어 회의를 주도할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되는가.

그럼 날 좀 가르쳐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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