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세상

신라호텔 한복 논란

케이_ 2011. 4. 15. 18:43
신라호텔 부페에서 한복 입은 고객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당연히 항의가 있었고 그에 대한 설명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한 사건이다.

그 상황에서는 권한 없는 사람과 실랑이 하지 말고
윗 사람을 불러달라고 해서 융통성 있는 처리를 요구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엔 출입 제지를 당한 당사자가 애국심으로 감정에 호소했다.
신라호텔에서 '우리의 전통 의복'을 무시했다! 라고.

그리고 무조건 신라호텔이 개망나니가 됐다.
삼성은 원래 까고 싶은 지 오래였고
키보드 앞에서는 왠지 한민족의 자긍심이 넘쳐 흐른다.

단지 '한복 = 출입금지'의 사태라면 나도 한심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출입을 제지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호텔의 고용자다.
어차피 너나 나나 돈 벌자고 남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뻔한 사건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한 번 생각이나 해보자.



첫째, 부페에서 한복이 왜 위험한 복장인가?

그냥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레스토랑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부페는 좀 다르다. 
아니 어디 부페 한 번 안 가본 사람 있는가. 다들 알 만한 상황이다.
부페에서 한복은 위험하다. 한복 뿐만 아니라 치맛자락 긴 모든 옷이 위험하다.

부페는 줄을 서서 음식을 집어가는 공간이다.
그리고 부페에서 한복을 입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다.
결혼식 부페에서 자주 겪는 일이니 알겠지만
그 분들은 보통 젊은 사람에 비해 다닥다닥 붙어서 줄을 서던 세대이고
더 빨리 집으려고 손을 멀리 뻗기도 한다.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치맛자락이 밟혀 넘어지는 건 쉬운 일이다.

호텔 직원은 한복이 격이 안 맞아서 안 된다고 한 것이 아니라
위험해서 들여보낼 수 없다고 했단다.
내가 보기엔 한복 입은 할머니들이 치맛자락을 스스로 밟거나 옆사람에게 밟혀
중심을 못 잡고 넘어져서 사고가 나는 걸 겪다보니 만든 규정이다.
이걸 과연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원글을 읽어보니 직원과의 실랑이 중에
한복은 부드러운 소재이고 날카로운 부분이 없다는 반박을 한 것 같다.
왜 한복 출입을 규제했는지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감정이 상해 발끈한 것 같은데 (게다가 한복 디자이너가 있었으니)
이미 직원의 말을 이해할 생각은 사라졌고 자기 주장을 강화하려다 생긴 대립 같다.



둘째, 기모노는 되고 한복은 안 되는가?

한복 자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한복이 위험해서 안 된다고 말을 한 것이니
그럼 지금 내가 입고 있는 한복은 왜 안 위험하며
내가 그 상황을 이해했으니 더 조심할 것이므로 괜찮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게 맞다.

사실 한복이라도 책임자를 불러서 피해가면 될 규정이라고 본다.
동네 식당에서 '사장 나오라 그래!'하며 진상 떠는 것과는 달리 그곳은 호텔이지 않은가.
늘 한복만 입고 다니는 한복 디자이너라는데 못 들어가게 했겠는가.
권한이 없는 직원한테 따졌으니 어려웠던 것 뿐이지.

즉 융통성이 적용되는 복장 규정이었을 텐데
기모노 입고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아싸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까보자!
라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당연히 보폭이 좁은 기모노도 위험하고
한복보다 치맛자락이 더 긴 서양식 드레스도 위험하다.
그리고 한복을 입은 할머니들도 위험하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는 따지려 들지 않겠다.
다만 그저 한 가지 확실한 명제를 따지자면
여긴 한국이니 당연히 한복 입고 넘어지는 사람을 자주 겪지 않겠는가.
기모노를 입은 사람이 넘어져 사고가 난 적이 없었으므로 그런 규정이 없었던 것이고 
한복을 입은 사람이 넘어져 다른 손님에게 피해가 간 적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에
한복 출입 제한 규정이 만들어진 것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지금 기모노와의 비교는 옳은 방식이 아니라고 본다.
호텔은 돈을 벌기 위해 세운 곳이고 호텔의 규정도 영업을 위해 만든 것이다.
한복 출입을 허용해 낙상 사고가 자꾸 나는 것보다
출입을 제한하고 욕 먹는 게 득이 됐으니 그런 규정이 생겼을 터이고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욕을 먹어가며 제한할 이유가 없으니
다른 복장은 막지 않은 것이다.
기모노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 '막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다.

농담삼아 한 마디 던져, 어찌보면 다행이다.
기모노 입은 사람이 자주 넘어져 기모노 출입 제한 규정이 생겼다면
남의 나라 전통 복장을 무시했다며 지금보다 더 큰 국가적 망신을 당했을 테니.

규정이 이상하면 이상한 부분에 대해서 항의를 하는 게 맞지
그 규정이 만들어진 과정을 왜곡하며 '한국을 무시했다!'라고 주장하는 건 넌센스다.

그저 한 가지 이상한 규정에 막힐 경우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모든 규정은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항의하는 것이 옳다.



셋째, 넌 뭐냐? 쪽바리냐? 삼성빠냐?
개도 소도 개뿔도 쥐뿔도 아무 것도 아니다.
난 그저 감정에 호소하여 끌어가는 여론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호텔 직원이 되어볼 필요는 없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회사 가서 일을 하다가
당신의 입장을 사뿐히 씹어주고 원칙적으로 옳으냐 그르냐 발끈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때 여론에 까이고 윗사람에게 까이고 사표 쓰고 싶어질 호텔 직원의 입장을 떠올려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