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관고등학교'라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가 있다
일종의 특수목적학교이다
 
올해에는 민족사관고의 국제반 전원이 해외 명문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매우 멋진 일이다
그런데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렇게 멋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가끔 난 생각을 비관적으로 하는 편이다
(사실은 가끔이 아니라 인생의 절반은 낙관에 나머지 절반은 비관에 쏟는 편이다)
 
이 학교에는 재미난 현상이 있다
 
교복도 개량한복이고 민족정신을 강조하지만,
사실 그곳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한다
게다가 해외의 명문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물론, 국제화를 통해 민족 발전을 이끌 수 있고
민족사관고의 방식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민족' 얘기는 웃자고 한 소리다
(그러고 보니 학교 이름과 국제화 얘기는 진지하게 한 말이라야 우스웠겠다)
 
민족사관고를 통해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엘리트 양성'에 관한 것이다
 
민족사관고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
당연히 자질을 보이는 학생을 추려낼 필요는 있다
재능 없는 학생을 인재로 길러내려 한다면, 그건 낭비다
 
그러나 역으로,,
재능이 있다고 누구나 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민족사관고에 있다고 다 유능한 인재인 것도 아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재능있는 인재 후보 가운데
민족사관고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은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는 일부라는 것이다
 
재능있는 학생 중에서도 좋은 배경을 가진 쪽이 성공한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인재가 아닌 학생은
또 그들끼리의 경쟁에서 환경 좋은 쪽이 성공한다
 
결국 재능이 있건 없건
각각의 필드에서 승자는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쪽이라는 것이다
 
실로 이것은 비극이다
 
민족사관고가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기 위해서는,
(환경적으로 선택받은) '귀족적 인재'가 아니라
(재능만 갖추면 누구나 가능한) '능력적 인재'가
그 대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는 더 나아가 카이스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카이스트도 민족사관고와 마찬가지다
형편되는 집안에서 자식을 과학고에 입학시킨 결과로,
(주로) 선택받은 학생이 진학하는 매커니즘을 가졌으니 말이다
 
사실은 서울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의 학교보다는 조금 더 평범한 경쟁 방식을 갖고 있지만,
신입생 환경 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선택받은 쪽이 경쟁에서 더 우세하다
서울대 신입생의 절반은 서울 사람이고, 또 그 중 절반은 강남 사람이지 않던가
 
이쯤 되면 엘리트를 만들어 내는 구조가 조금은 불만스럽다
 
물론 노력이 성공의 가장 큰 요건이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못 가진 자는 더 많은 노력을 쏟느라 더 많은 기회비용을 잃어야만 한다
역시나 손해는 손해다
 
좋은 학교에 진학한 모두가 부잣집 자제분은 아니고
좋은 환경을 가졌다고 모두 엘리트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요는
뛰는 거리가 같다고 다 공정한 경쟁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적어도 지금 사회에서는
운동화를 못 사 고무신을 신고 달린다면, 그건 사회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내가 가끔 이런 얘기를 하면 주위에서는(좋은 학벌의 주위에서는,,)
'우리집도 잘 살지는 않는데?'라 한다
 
편차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게다
 
0에서 70까지의 분포와
30에서 100까지의 분포가 있다면
그 중 40은 겹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평균은 30이나 차이가 난다
 
엇비슷한 사람이 대부분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누군가 30이나 먼저 갖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실제 모습이다
 
반드시 부유함에 비례해서 엘리트가 나온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코 적다 할 수 없을 만큼 그 둘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때에 따라,
나이키 운동화를 신어도 예선에서 떨어질 수 있고
맨발로 뛰어도 금메달을 딸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도 나이키 운동화 없이 뛰었는데 은메달 땄어, 고무신이라고 불평하지마'라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장화라도 신을 수 있었다면, 널 이기고 금메달을 땄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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