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지독히도 굉장히 못 마시는 편이다.
어제 굉장히 늦게까지 놀았는데
술을 못마시니까 재미나게 놀지를 못해 아쉬워 죽을 뻔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야 남들 취하는 만큼 취하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야 겨우 내가 마신 술로 취한다는 것이 이해나 가겠는가.
내가 술자리에 끼면 취하는 재미가 날리가 없다.

허나 생각보다 술에 약한 사람은 많다.
술을 버티며 마시는 분위기가 많은 터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량이
원래의 생물학적 주량보다 평균치가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3명만 모이면 술자리가 만들어진다는데
그만큼 술에 관한 속설은 매우 다양하고 방대하다.
그래서 술에 약한 사람에 대한 몇가지 낭설을 풀어 보았다.
  1. '취하거나 구토하는 것은 정신력의 문제이다.'

    채식주의자가 고기를 먹는 것은 정신력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땅콩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는 것은
    정신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 고달퍼 자살하고 싶은 것이다.
    정신 바짝차리고 술을 마시면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연히 정신을 놓지 않고 있으면 주사를 부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두통과 구토와 사망 따위는 뇌가 제어하지 않는 별개의 문제다.
    술이 약한 사람에게는 주사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주사를 부릴만큼 많이 마시기 전에 기절하거나 죽을테니까.
    오히려 술 마실 때 정신력이 필요한 사람은
    술을 잘 마시면서 술버릇이 안좋은 사람 아니겠는가.

  2. '얼굴이 붉어지는 것과 잘 취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취하는 것이 정신상태의 문제만을 말한다면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신체작용에 관한 것을 다 포함한다면 이것도 낭설이다.
    얼굴이 쉽게 붉어지는 것은 몸에 효소 하나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유전적으로 이 효소의 부족은 동양인한테만 존재한다.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잘 취하는 체질이 있다.
    서양의학적으로는 알데하이드 분해효소가 부족한 사람이고
    동양의학적으로는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다.
    (불행히도 나는 이 두가지에 모두 속한다..)
    알코올은 몸 안으로 들어오면 우선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바뀌는데
    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는 두가지 효소 중 한가지가 선천적으로 결핍된 것이다.
    물론 이 효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도
    효소의 처리량을 넘어서게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어질테니
    얼굴이 붉어진다고 다 효소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쉽게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술을 조절하자.
    아세트알데하이드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며 즉시 뇌부터 압박할 것이다.
    따라서 금방 머리가 아파오는 것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과 같이 효소 부족의 한 지표이다.
    그리고 몸에 열이 많은 것도 술이 약한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조건이다.
    알코올은 유난히 쉽게 증발하는 액체인데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알코올 기체를 몸에 담고 술자리에 앉아 있게 된다.
    술을 마시다보면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가시지 않은
    역한 술 냄새가 입 안에서 맴돌 때가 있다.
    탈수를 막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술자리에서 오래 버티고 싶다면 얼음을 자주 먹어라.
    조금은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알코올 냄새가 역해서 견디기 힘든 건 단지 사회적인 문제이고
    생물학적인 진짜 문제는 몸이 더운 상태로 있으면 혈관이 팽창한다는 것이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혈관을 후룸라이드 삼아 신나게 온 몸을 돌아다닐 것이다.
    찜질방에서 소주팩에 빨대를 꽂아 들고 있으면
    죽음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 호프집에 앉아있다고
    저승사자가 눈에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호프집은 매우 어둡기 때문이다.. 는 아니고..)
    다만 더 정신이 빨리 혼미해져 택시를 잡으려다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
    술자리에서 자신의 주량에 좀 더 조절에 주의를 기울여라.

  3. '술을 많이 마시면 주량이 는다.'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도 대학 생활 내내 술을 억지로 계속 마셔봤지만 주량은 전혀 늘지 않았다.
    주량이 느는 것 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정확히는 주량이 느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둔감해지는 것이다.
    찜질방에 자주 다니면 뜨거운 온도에 더 오래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상을 입는 온도가 남들보다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술이 늘었다고 착각할 수는 있지만
    몸은 여전히 똑같은 알콜양에서 망가질 것이다.
    오히려 고통에 둔감해져 망가질테니 죽기는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효소 중 두 번째 효소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술을 자주 마시면 그 효소가 활성화되어 주량이 약간은 늘 수도 있다.
    그러나 연습을 많이 한다고 사람이 하늘을 날 수는 없듯이
    주량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자신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주량은 일종의 착각이다.
    실제로 주량이 는 것인지 아닌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3개월만 술을 마시지 않아보면 된다.
    그 후 다시 마셨을 때의 주량이 몸이 견딜 수 있는 원래 주량이다.
요즘은 술자리가 매우 편하다.
사회 의식도 많이 바꼈고 졸업한 후 만나는 사람들은 대학생처럼 무식하지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어리디어린 대학생들에게 술은 문제다.
한가지 조언을 하자면 술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을 만큼만 마셔라.
주선(酒仙)이신 시인 조지훈 선생의 '주도 18단'을 보면
주도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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