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만날 사람이 없어서 또 나갈 일이 없다. 이 불쌍한 신세.

그래서 어머니가 나가신 틈을 타 또 주방에 잠입침투했다.
마다가스카 펭귄처럼 전문가의 솜씨로 숨어들어 간식을 만들어 먹을 생각이다.
다행히 일요일 오후라 냉장고에는 전투 장비가 가득 차 있다.
웬만한 건 무리 없이 해먹을 수 있는 상황이다.

어제 토새뷰 모임의 점심 메뉴가 홍대 앞 미미네 손튀김 전문점이었다.
묭이가 덴까츠를 너무 좋아해서 쭉쭉 흡입하며 계속 더 달라라고 하자
친절한 사장님이 좀 싸 주셨다. 그래서 나도 함께 얻어왔다.
(덴까츠는 고루묵을 튀긴 가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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묭이와 내가 얻어온 미미네 튀김집의 덴까츠.



덴까츠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튀김 우동에 들어가는 속에 아무 것도 들지 않은 공갈 튀김 말이다.
사람을 크게 속이는 짓인 것 같지만 맛있어서 매번 용서하고 만다.

어쨌든 난 오늘 덴까츠를 이용해 요리를 해야한다. 오늘 안 쓰면 맛 없어져 버릴 테니까.
그래서 오늘 메뉴는 듣도보도 못한 내 맘대로 요리다.
덴까츠가 주재료니까 기름과 어울리는 것들로 골라야 할 텐데.. 음 그래 정했다!
덴까츠, 알리오 에 올리오, 두부전, 닭고기, 그리고 떡볶이 국물.
작전 계획 완료. 좋아 시작이다.

먼저 파스타부터 공략한다.
면을 삶아 다진 마늘과 함께 볶으면 알리오 에 올리오는 손쉽게 끝. 하나 해치웠다.
오늘 기름은 카놀라유였다. 우리집은 찬장을 열 때마다 기름 종류가 다르다.
뭐 면에 배어드는 건 비슷비슷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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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내가 먹을 만큼만 하기 때문에 팬이 너무 넓다는 게 문제다.



다음은 두부와 닭이다.
두부는 덴카츠를 묻혀야 하니까 두부전을 할 때보다 반 정도로 얇게 썰었다.
닭은 어머니가 삶아둔 게 있어 그냥 조금 뜯어 쓰기만 하면 된다. 장조림 고기처럼 쭉쭉 찢었다.
파스타를 볶은 기름이 팬에 남아 있어서 두부와 닭에게 또 썼다. (우리 업소는 기름을 재활용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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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파스타와 두부전, 닭고기에 덴카츠를 묻히면 끝이다.
이렇게 해서 메인 디쉬는 완성이다.



당연히 떡볶이도 만들어야 했지만..
슬프게도 혼자 먹어야 하기에 양이 많은 건 곤란했다.
그래서 고추장으로 떡볶이 국물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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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먹을 건 이 정도면 충분하다.
떡볶이까지 있으면 너무 배부를 것 같다.



집에 있는 고추장을 썼기 때문에 색은 짬뽕 국물 같지만 그래도 떡볶이 국물이 맞다.
도대체 분식집 떡볶이는 어떻게 그런 선혈같은 빨간색을 내는 거지. (벽돌가루? 헉!)

그리고 모카포트로 커피도 한 잔 뽑았다.
냉장고에 우유가 없어 베지밀로 라떼를 만들었더니 시럽을 넣은 것처럼 달달해서 좋았다.
이름은 뭘로할까. 카페 베지떼? 음 원숭이 왕자 베지타가 생각나서 안되겠다.
그냥 단순하게 <카페 베지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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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라떼에 시럽을 안 넣어 먹는 편인데 베지밀의 단맛은 적당하기 때문에 괜찮다.



파스타는 파스타에 과자맛이 함께 나는 느낌이고
두부전은 두부에 과자맛이 함께 나는 느낌이었다. ㅎㅎ

근데 두부가 부드럽고 덴카츠가 바삭하니 식감이 괜찮았다.

맛은 닭고기가 젤 좋았다.
닭과 과자 맛의 결합은 후라이드 치킨에서 이미 검증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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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본이다. 오늘도 임무 완수다.



떡볶이 국물에 설탕을 좀 더 넣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많이 단 걸 안 좋아하니까 괜찮다.
전반적으로 모두 먹을만 했다. 맛있게 잘 먹었다. 우헤헤.

남은 덴카츠는 우동 만들 때 넣어 먹어야지. 우후후. 아주 좋다.
덴카츠를 싸주신 미미네 사장님과 덴카츠를 달라고 한 묭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나저나
으 설거지가 젤 귀찮다. 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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