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공정 무역이 많이 확산되었다. 쉽게 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고 상품도 많다.
그 중 가장 많은 품목은 커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저개발 국가의 생산자를 돕자는 공정 무역이 가장 허세가 많은 품목인 커피를 소비하라고 요구한다.
세계에서 가장 커피 값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공정 무역으로..

좋은 의미를 부여한 허황된 소비.

우리나라의 커피값은 분명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그런데 공정 무역의 커피 가격도 거기에 맞춰져 있다.
공정 무역은 기존 상품보다 더 비싸게 팔도록 되어 있다.
'공정'이 의미하는 바는 소비자가 제 값을 치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커피값은 이미 제 값이 아니다.
유독 공정 무역에서 커피를 많이 파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마실 커피, 의미가 좋은 걸 마시면 물론 더 좋겠다만
그래도 난 그렇다.
자본주의적 상품은 시장의 거품을 머금는 것이 정상이지만
적어도 의미를 부여한 상품이라면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해야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이런 생각은 대학생의 봉사 정신을 접하며 비롯되었다.
외국에 나가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선한 대학생들.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 가난한 학생을 짓밟는 시스템을 존중하며 최선을 다해 스펙을 쌓는 그들.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아이들이 많지만 월드비젼에 기부하는 게 마음이 더 뿌듯한 우리.
(월드비젼 기부는 비용 대비 효과라는 다른 관점이 있으니 그저 예로만 가볍게 넘어가자.)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마음과
자신이 경쟁할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은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도 서로 다른 것인가.

내가 보기엔 스스로의 마음이 편해지는 방향으로 임의의 선행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악행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으니까.

공정 무역을 통해 거품 낀 가격의 비싼 커피를 산다.

그리고 내가 공정 무역 커피를 마시며 선량한 사람임을 자각하는 동안
밥보다 비싼 커피도, 곧 물가를 따라 함께 오르는 밥 값도,
마치 유리창과 같아져서 여기 있다는 건 알지만
생각 없이 저 너머를 보자면 얼마든지 안 볼 수 있는 것이 되고

밥 값이 부담되는, 그리고 인스턴트 커피만 마시는,
나와 시장을 공유한 가난한 사람들은
그저 무능함과 노력 부족으로 경쟁에서 도태되어
자신의 문제로 인해 누릴 것을 다 못 누리는 사람이 된다.

사실 한국 사회 내에서는 공정 거래가 원래부터 없었으니까.





덧붙여,
공정 무역과 해외 봉사를 낮춰볼 생각으로 쓴 글은 아니다.
선행을 최소 비용의 최대 효과를 추구하며 선택적으로 하는 모습을 발견해서
실제로는 정의로운 게 아니라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고 싶어할 뿐이라는 것을 알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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