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날이다.
집은 화곡동이고 10시까지 분당으로 가야한다.
다행히 집 근처에 셔틀 버스가 선다.

HR팀에서 보내준 배차표를 꼼꼼히 확인하고
그래도 초행길이니 20분쯤 일찍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시작부터 불길하다.
조흥은행 앞에 버스가 선다고 써 있는데..
아 조흥은행은 벌써 예전에 문을 닫았다. 신한은행에 들어간 게 언젠데..
게다가 여긴 아예 건물 자체가 없어졌다.

그래도 조흥은행'터'에는 서겠지.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기다렸다. 20분을. 그래 20분을..
오늘 추워진다고 했는데 아침에 20분을 서서 기다렸다.

누가 옆에서 같이 기다리기라도 하면 안심이 좀 될 텐데..
이 동네는 역시 컴퓨터로 먹고 사는 동네가 아니다.
나 외에 셔틀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셔틀이 왔다.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몬스터 셔틀이!!

근데 이게 왠 걸.
아아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에 셔틀이 서는 것 아닌가.
조흥은행 앞에 선다며!!
셔틀은 고작 10미터 앞에 있는데 저걸 타려면 신호가 바껴야 한다.

결국..
그렇게 눈 앞에서 셔틀 버스를 보내고 말았다. 으으으.

그렇다고 출근을 안 할 순 없고.. 머리를 굴려보았다.
HR팀이 알려준 장소에 서 있다가 셔틀을 놓쳤으니 분명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성실하고 똑똑한 인재이기 때문에 첫 출근에 대놓고 지각을 할 생각은 없다.

지하철로 가면 아주 정확히 시간을 맞춰 지각한다.
어떤 버스도 셔틀보다 빠를 순 없고,
택시를 타봐야 분당 전까지 한 번 밖에 정차하지 않는 셔틀과 큰 차이가 없다.
요금은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지. 셔틀이 분당 전에 한 번은 정차를 한다. 오목교역에서.
난 택시를 타고 셔틀을 쫓기로 했다. 영화에서처럼.
'아저씨! 저 차를 따라가주세요!!'
라고 하지는 않았고, 그냥 오목교역까지 택시를 타고 셔틀을 쫓았다.
지금 난 오목교역 8개의 출구 중에서 어느 위치에 셔틀이 서는지도 모른다.
그저 추리를 할 뿐이다. 버스의 진행방향을 보건데 동신목동한방병원 근처는 지날 것 같다.
분당으로 가려면 3번 출구에서 7번 출구에 걸친 도로를 지날 것이고
그 200m 거리 중 한 군데에 셔틀이 설 것이다.
(이럴때 스마트폰 요금이 덜 아깝게 느껴진다.)

다행히 안양천을 따라 오목교역 쪽으로 곡선 구간과 횡단보도가 만난다.
교차로가 있어 신호도 살짝 걸리는 것 같고.
그래서 택시에서 내려 가로질러 뛰었다.
셔틀은 곡선을 그리며 오목교역으로 향하고 난 직선으로 앞질러 달려갈 수 있다.
이제 셔틀이 어디에 서는지만 알아내면 된다.

교차로를 바로 밟고는 버스가 설 수 없을 것이고
교차로에서 약간 벗어나 골목을 만나는 지점에 설 듯하다.
3번 출구 앞쪽이나 7번 출구 뒷쪽. 자 그래 확률은 반반이다.
난 좀 더 길이 좁아서 버스가 서기 좋은 3번 출구를 택했다.

나이스!
전혀 정류장이 없는 곳에 뭔가 버스를 기다리는 듯한 긴 줄이 보였다.
아 이 줄이 맞아야 할 텐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 줄이었다. ㅎㅎ

이렇게 힘겨운 첫 출근을 무사히 완수했다.
입석으로..
그래 이 정도면 잘 했어. ㅎㅎ


이 날의 트위터.

첫 출근 지각미수. 셔틀 배차표가 틀려있었다.
늦어도 HR팀 책임인데 배차표도 모른채 추리만으로 따라잡아 탔다. 나 정말 인재 ㅎ.
대신 5목교까지 택시 5천원, 500m 전력질주, 땀 50cc, 그리고 늦게 타서 입석이다. 젝일.
아아 농협 셔틀 타면 어쩔 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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