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영화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풍운.와호장룡 모두재미없었다..)
좋아하는 부류의 무협물은 있다.
그 중에 두 가지. "영웅"과 "연인"이라는 영화는 특히 재밌게 봤다.
둘 모두 그 영상이 너무나 훌륭한데 화려한 영상 속에 철학이 잔존해서 더좋다. (사실 가볍게 보면 애들 장난이지만 그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영웅"에는 세상에 관한 철학이 녹아있고 "연인"에는 사랑의 감정이 담겨있다.
그 중 "연인"을 케이블에서해주더라.
워낙에 영상이 아름다운데다가. 특히나내가 좋아하는 대나무 숲과 초록풍경이 끊임없이펼쳐져서. 모든 순간이 다 근사하다.
그 중에도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데.
두 주인공이 결투를 하는 도중에 계절이 계속해서 바뀌어 겨울이 된다.
그 때의 영상은 정말이지 무협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이 좋은 이유는 그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결투중의단편적인 행동만으로도 깊은 감정을 거스름 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하면.
유덕화는 장쯔이의 옛 사람이고 금성무는 지금의 연인이다.
유덕화는 자신의 사랑을 빼앗은 금성무에게 비도를 던지려 하고 있고.(비도는 영화의 화려한 영상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던져 맞추는 단도인데 여간해선실패없이 목적하는 바를 맞춘다.)
장쯔이는 유덕화가 비도를 던지면. 자신도 가슴에 꽂힌 비도를 뽑아 유덕화에게 던지겠다고 한다.
금성무는 장쯔이가 가슴의비도를 뽑게 되면 출혈로 죽게 될테니.체념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유덕화가 자신을 죽이기 쉽게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제 세 사람은 목숨을 걸어둔 채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유덕화는 비도를 던지고 자신도 죽으려는 마음이 확고하고 장쯔이도 가슴의 비도를 뽑는데 망설임이 없다. 금성무는 장쯔이가 죽지 않기많을 바라며 유덕화에게 목숨을 내밀 뿐이다.
세 사람 모두 사랑에 목숨을 내걸었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모두 자신의 결정을 상대의 목숨과 저울질 해야 한다. 상대를 살리려면 무엇이든 해야하는데 더 이상 나아질 방도가 없다.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상황이다.
이 때 유덕화가 비도를 던진다. 순간 장쯔이도 가슴의 비도를 뽑아 던진다. 금성무는 좌절한다.
그런데 유덕화는 비도를 손에 쥔 채 있다. 날아간 것은 비도에 묻은 핏방울이다. 유덕화는 장쯔이의 비도에 맞아 죽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장쯔이도 함께 죽게될 것을 알고 있다.. 함께 죽고 싶은 집착도. 그렇다. 사랑이다.
그런데 장쯔이의 비도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장쯔이의 비도는 유덕화를 죽이지 않고 금성무에게 날아가는 비도(정확히는 핏방울)을 맞추어 떨어뜨렸다. 장쯔이는 두사람 모두 죽기 않기를 바랐다. 자신의 목숨을 댓가로.. 한 사람을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 모두에게 진심인 그것도. 그렇다. 사랑이다.
금성무는 장쯔이가 비도를 뽑지 않는 것만을 바랐다. 자신의 칼도 버리고 유덕화가 비도를 맞추기 쉽게 더 다가만 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다면. 체념 그것도. 그렇다 사랑이다.
어떤 사람은 쉽게 포기하는 것은사랑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가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감정은흔하게 주고받는 이기적인사랑보다 값지다. 금성무는 무력했지만 그의 태도는 강했다.
어떤 사람은 사랑에 집착하는 것을 경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을 얻고 싶은 감정의 극한은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투영한다. 유덕화는 이기적이었지만 그의 감정은 순수했다.
어떤 사람은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행동을 역겨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둘 모두가진심이라면 감정을 조롱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장쯔이는 단호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확고했다.
(나에게는)철학이 느껴진 영화였다. 애들이나 볼만한 스토리에 단편적인 행동들의 결합. 이것이 무협물인데 이런 것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동이라니. (뭐 사실 만화책을 볼때 감동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이긴 하지만..)
하지만 단호하게 말해서. 시시한 무협물이라며 "별거 아닌거에 철학을 부여하네.."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삼류 무협물보다도 인생을 대강 사는것 아닌가. 실제로 삼류영화는 아니란 말이다.
각각의 인물에 나를 투영해본다.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아. 어렵다..
내가 금성무라면 유덕화도 장쯔이도 움직이기 전에 칼로 나 스스로를 죽일 수 있을까.
내가 유덕화라면 그 억울하고 비통한 배신감을 모두 거둔채 물러날 수 있을까.
내가 장쯔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또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예전에 며칠쯤 검을 만져(말그대로 만!져!봤다.) 본적이 있다. 무언가를 벨 능력은 없지만.검이 왜 철학을 담고 있는지는 알 것도 같다.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것. 그것은 내가 휘두르는 의지의 결과다. 그런데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자가 검을 휘두르면.원치 않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나를 다치게 하고. 검마저 망가뜨린다.. 사람 마음이 바로이런것 아닌가.
검이 지나야 할 길을 보는 것. 그리고 왜 휘둘러야 하는지를 아는 것. 이것이 철학이다.
마음이 지나야 할 길을 보는 것. 그리고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를 아는 것. 이것이 사랑이다.
내 검은 어떻게 그어질까. 아직 검선을 그어 본적이 없는데.. 수련을 열심히 해서 마음을 다잡고 바른 선을 긋겠다!
(스승없이 검을 배우는게 엄청나게 위험한것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기본부터 배우고 싶은데. 동네엔 우슈학원이 없다. 합기도 학원만 잔뜩 생기고..이종격투기 밉다. -.-)
(근데 왜 장쯔이만 장지이라고 안하고 장쯔이라고 하는거지.. 쓰려면 유덕화도 류더화라고 하던가.. 이래서 번역은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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