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건 조금도 안 힘들었다.
군대와서 추운 게 당연한거지 뭐..
훈련은 전혀 고달프지 않았다.
군대와서 힘든 게 당연한거지 뭐..
그러나 감기는 미칠 듯이 힘들었다.

감기 별 7개
정신교육 때 발저린 것 별 6개
환복은 겨우 별 5개..

청소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청소 하기 전이나 후나 똑같은데 왜 자꾸 시켜..

훈련 마치고 와서 손 씻으면 청소시킨다.
청소하고 와서 손 씻으면 소총 손질시킨다.
소총 손질하고 손 씻으면 전투화 손질시킨다.
전투화 손질하고 손 씻으면 점호 청소 시킨다.
점호 끝나면 곧장 잔다. 손 씻을 시간 없고 유동 인원 없다.
며칠만에 손 씻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개인 정비 시간이 많으냐 적으냐는 순전히 운이다.
생활관 바닥 담당은 매번 시간이 부족했다..
군대는 줄이다..

훈련소 가면 건강해져서 온다는 말은 낭설이다.
운동과 노동은 다르다.
건강했던 사람은 건강하게 허약한 사람은 더 허약하게 돌아올 것이다.

20명 또는 40명을 모아놓고 이렇게 물어본다.
"자고 일어났더니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점호를 취하기 어려운 인원 없습니까?"
옆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자기만 안 아프면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야만 한다.
대답을 안하면 "없습니까?"라고 또 물어보니까..
"있습니까?" 라고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군대와서 처음으로 서러웠던 적.
아무리봐도 소대에서 내가 제일 아픈데 몸에서 열이 안날 때..
군대는 열이다.

엄살부리는 걸 싫어하는 타입이라서
죽기 직전까지는 당당하게 뭐든지 열외없이 다했다.
미련한 생각이었다..
약삭빠른 사람들이 밧줄탈 때 유격 체조를 계속 했더니
그 다음날 훈련부터 남들과 벌어지는 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퇴소할 때는 이미 건강 상태가 남들과 달랐다.
한치 차이가 나중엔 치명적이다.
훈련은 엄살이다.
그리고 전우애는 복무신조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훈련소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더러운 곳이다.
결막염이 그렇게 잘 걸리는 병인지 처음 알았다. 우리 소대에서만 두 명 걸렸다.
이때 아주 살짝 놀랐다. 정말 매우 살짝.
그러나 나중에는 그렇게 더러운 곳에서 병 없이 퇴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주 크게 놀랐다. 정말 아주 크게.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지나고 나면 세차를 꼭 하자.
그리고 훈련소 다녀와서 감기조차 안걸린 사람이 있다면 가까이 하지 말자.
세균 배양액 속에서 수영하고 나와도 멀쩡할 사람이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자기 방으로 초대하면 최악이다.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필사적으로 둘러대거나
정 안되면 바람이 쐬고 싶으니 쓰레기 소각장에서 만나자고 간청해라.

군대에서는 감기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기가 무서운 게 아니다.
겉으로 보일만큼 병이 커지기 전에는 진료를 하지 않는 군의관이 무섭다.
군대에서는 단 3가지 케이스만 진찰이 가능한 것 같다.
미친척하고 엄살부릴 때,
치료 시기를 놓쳐 훈련 중에 쓰러졌을 때,
치료 못 받아 죽어서 부검할 때.
나머지는 그냥 문진으로 약 분배..

에피소드 한 개.
우리 소대에 배탈이 심하게 난 훈련병 한 명이 의무대로 가려는데
지나치게 교육을 잘 받은 불침번 훈련병이 암구어를 물었다.
당직부사관이 벙쪄서 "아씨 몰라 급해 빨리 열어!!"
암구어를 들춰보지도 않고 당직을 선 것이야..
잘못하면 배탈난 훈련병만 죽을 뻔했다..
근데 그 훈련병이 한번은 의무대에서 그냥 돌려보냈고 두번째는 무사 통과했다.
첫번째는 생활관에서 토하고 의무대로 갔고 두번째는 의무대 가서 토했다고..
군대에서는 뭐든 그 자리에서 보여줘야 한다.

인터넷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4주 훈련 준비물.
음료수.
들어가면 가장 중요한 게 물이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열악한 환경에서는 물이 가장 중요하다.
훈련소에서 가장 부족한건 비타민이 아니라 수분이다.
물을 한 모금만 더 마셔도 감기를 하루는 더 늦게 걸릴 수 있다.
그러면 퇴소할 때 체력이 50% 는 더 붙어서 나올 것이다.
어차피 가방 검사 안하니까 마실 것 잔뜩 챙겨가라.
들어갈 때 어깨가 빠질만큼 무거워도 나올때 온몸이 으스러지게 아픈 것 보다는 낫다.

인간 세계로 귀환하고 나서 느낀 점.
젠장 예비군 훈련 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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