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만화에서 강풀이라는 만화가의 만화를 즐겨본다
짧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매우 깔끔한데다
연결고리를 위주로 줄거리를 짜는 작가의 의지가
매우 재미난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자 만화에서는 사람들이 댓글을 통해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물리학 교실쯤 될까, 줄거리 속에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데,
지금도 댓글란에서는 시간을 멈추는 것에 대한 토론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나는 SF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에 오류가 있다해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까'라고 하며 넘어가는 편이다
게다가 창작물에 딴지를 걸만큼 '네티즈니컬'하지도 않다
 
그런데 나는 과학을 매우 즐거운 시선으로 보는 터라
시간 여행에 관해 여러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만화에는 전혀 딴지를 걸지 않으며,
그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시간 여행은 아직 그 어떤 이론도 완성된 것이 없고
유명한 학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현대 과학의 한 주제이다
 
그런데 나는 시간 여행을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는 것 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이론물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오한 가정과 논리 적용과 계산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하는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 처음에 세운 가정이 틀렸을 경우다
그런 경우는 중간의 모든 논리와 계산이 맞는다 하더라도 결국엔 잘못된 결론을 내게 되는데
더 큰 문제는 논리 전개 과정에는 오류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잘못된 점을 찾아내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가정하고 상상하는 것 또한,
단지 가정만을 해두고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들으면 '뭘 모르는 소리'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물리학적 접근도 아니니 그저 한 재미난 상상 과정으로만 보아 주기를 바란다
 
시간 여행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만화의 소재인 시간을 멈추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만화에서는 등장인물이 추락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멈춘다
댓글의 토론에서는 사람이 지면에 닿기 직전에 시간을 멈춘 다음
그 사람을 붙잡아 구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었고,
조금 더 과학적인 논리를 갖춘 사람은 그래봐야 가속도는 줄일 수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렇다,
가속도는 시간의 축이 포함된 물리 개념이기 때문에 시간이 멈췄다 흐른다 하더라도 줄지 않는다
속력 또한 마찬가지다
시간을 멈추어 봐야,
추락하는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 구조 매트를 깔아주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럼 이번엔 시간 여행에 대해 생각을 해 보자
자주 해 보았던 상상이다, 시간여행,,
 
잘 알려진 역설 중에 이러한 것이 있다
'내가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나를 죽인 다면?'
 
물론 그렇게 되면 현재의 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과거로 가서 과거의 나를 죽일 수도 없을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완전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내가 시간 여행이 불가능하다 여기는 것은
이 역설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조금 더 과학적인 관점으로 시간 여행의 불가능을 말하고자 한다
물리학을 포함한 이론과학에서는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작용이 없고 내부에서 외부로 빠져나가는 작용도 없는 독립된 공간을 두고 '계(界)'라고 한다
(공간이라고 하면 x,y,z 따위의 좌표를 가지는 위치 기준인 것 같지만,
여기서 말하는 공간이란 모든 물리학적 축에 대한 경계를 통틀어 일컫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분 전의 우주와 지금의 우주는 서로 독립된 각각 하나의 '계'이다
 
외부의 압력이 연계되지 않은 진공병도 하나의 계이고,
내가 마시려고 물잔에 채워놓은 녹차의 공간도 하나의 계이다
 
이러한 계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보존 법칙'과 '연속성'에 근거하여 설명된다
 
고등학교 시절, 늘상 들어 온 '보존 법칙'은 모든 과학의 기본이다
질량도 보존되고, 에너지도 보존된다
측정 중인 질량이 변하려면, 또는 에너지가 변하려면
그 변화된 만큼의 다른 변화가 연계된 계 내에서 충당되어야 한다
 
내가 (SF 식으로) 우주 좌표 'X120, Y80, Z3' 따위의 곳에 서 있다가
'X120, Y80, Z4'로 위치가 이동했다 하더라도
우주라는 계 전체에서 변화된 것은 없다
질량도 에너지도 밀도도 모두 그대로인 것이다
단지 계의 안에서 내 위치만 변한 것 뿐이다
이것이 보존 법칙이다
 
그리고 '연속성'이란
끊임이 없는 절대적인 흐름을 의미한다
 
물을 천천히 끓여보자
섭씨 98도에서 99도를 거치지 않고 물이 느닷없이 끓어 버릴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또, 그 물로 라면을 끓이는데 익어가던 면발이 다시 건조해졌다가 완전히 퍼졌다가를 반복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나의 밥상을 수호하기 위해서 그것은 불가능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연속성이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이 물리학적 연속성은 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계들의 경계와 연결 사이에 존재하는 명확한 순서를 책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분가능이면 연속이다
곧, 연속적이지 않은 변화가 우주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우주적 수학 어딘가에 미분이 되지 않는 구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연속이 아니어도 미분될 때가 있다, 수학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연속성의 상실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이것은 치명적이다, 그 구간에서 만큼은 어떠한 물리적 계산도 먹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구간은 계와 계 사이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계는 외부로의 또 내부로의 어떤 물리학적 흐름도 없는 공간이다
한 계와 다른 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이쪽 계에 속한 우리는 절대 저쪽 계로 갈 수가 없다
즉, 어쩌면 4차원 공간이라 믿어지는 그 이상한 수학의 계가 존재할 지도 모르나
평생 우리의 우주는 그곳을 관측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1,2,3 다음이 반드시 4 이듯, 이 연속성은 변화할 수 없다
만약 3 다음이 5 라면 그 이론에서는 전 우주에 걸쳐 모든 순서가 1,2,3, 다음 5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주적 일관성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주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해 보라,
분명 주가가 올랐는데 통장 속의 돈은 줄었다면, 살고 싶지 않을 것 아닌가,
 
이제 시간 여행의 관점으로 돌아와 보자
 
과학자들은 시간도 우주의 한 차원, 즉, 좌표로 본다
시간의 흐름은 좌표의 연계된 상황일 뿐이다
내가 좌표 1에서 2를 거치지 않고 곧장 3으로 공간이동을 할 수 없듯이,
시간 또한 그렇다 3초 전에서 2초 전을 거치지 않고 현재로 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하자
만약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면 시간 이동도 가능할 것 아닌가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가정을 먼저 하는 것이다
수학적 증명 방식에 의존하여 공간 이동이 불가능함을 보여서 시간 이동도 불가능함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우선 나는 좌표 1에서 좌표 2를 거치지 않고 좌표 3으로 뛰어 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표 1부터 좌표 3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계를 가정해야 한다
그 계 안에서의 이동은 전 우주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으므로
나는 보존 법칙을 거스르지 않으며 합리적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연속성'이 문제였다
가정한 그 계 안에는 어떤 식으로도 반드시 좌표 2가 포함되는 것이다
게다가 좌표 2는 항상 좌표 1과 2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클레인의 항아리를 구하지 않는 이상, 나는 좌표 2를 건너뛰고 좌표 3으로 이동할 수는 없다
(클레인의 항아리는 안과 밖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정신없는 상상의 항아리이다)
 
결국 공간 이동은 불가능하고 시간 이동 또한 불가능하다고 추측해야만 한다
 
그럼 만약 시간 이동이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자
 
나는 어떠한 기이한 경험을 통해(우주인의 백색 광선이라고 하자) 우주의 원리를 깨달았고
몇몇 과정을 통해 타임머신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그리고 매우 까탈스러운 대학 도서관의 사서들과 어제 반납일을 놓쳐버린 책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나는 어제로 되돌아가 책을 반납하라는 메모를 어제의 나에게 남겨두고 돌아올 작정이다
(과거의 나를 만나서는 안된다, 그랬다간 내가 타임머신을 발명한 걸 어제의 내가 알게될 테고, 그렇게 되면 그(어제의 나)는 안심하고 책을 반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성격은 내가 잘 안다)
 
이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어제로 맞춘 후, 과거로 돌아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꽝! 하는 소리(나에겐 시간 좌표가 없으니 소리를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냥 상상하자, 그래, 환청이다)와 함께 전 우주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이제 전 우주에 걸친 시간계는 둘로 쪼개져 버린 것이다
 
자, 이 과정을 과거로 되돌아가(아니, 미래로 되돌아가,,) 다시 확인해 보자
 
그 짧은 순간 전 우주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내가 과거로 이동하는 순간 내가 살고 있는(아니, 살고 있던,,) 오늘의 우주에는 나를 포함한 만큼의 질량이 사라졌다, 사실은 그 뿐만 아니라 나의 존재 만큼의 에너지, 상태의 흐름과 그 변화량(미분값), 게다가 시간축만을 제외한 나의 모든 좌표 마저도 우주에서 연속성을 거스르며 느닷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딱 그 만큼의 어떤 에너지와 질량, 그리고 좌표 등이 어제의 우주에 첨가되었다
연속적 흐름 없이 서로 독립된 계 사이의 어떤 물리학적 실체가 한 계에서 다른 계로 넘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나,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해도 그 계는 순간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우리는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움직이는 동안 보존 법칙을 깨뜨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우리가 과거로 가는 동안 어제의 우리가 그대로 오늘로 넘어와야만 한다
조금의 단절성도 없이 연속적으로 말이다
물론 내 뱃속에 든 햄버거 조차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아야만 한다
만약 오늘 내가 실수로 화장실을 다녀왔다면 난 어제로 갔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다른 어떤 함수 안에 들어서 버린 것이다
 
아주 정확하게 임의의 기체가 채워져 있는 풍선이 두 개 있다
한쪽 풍선에서 어떠한 특별한 수를 써서 풍선에 변화를 가하지 않고 공기를 조금 빼내어 다른 풍선으로 옮겼다고 치자
풍선이 어떻게 될까 한쪽은 터지고 다른 한쪽은 쭈그러 들것이다
이동시킨 공기의 양에 영향을 받겠지만 어찌되었는 양쪽 모두 망가진다
빼낸 공기의 양이 많다면 공기를 빼낸 풍선은 급격히 수축해서 그 안의 모든 계가 원래의 모습을 잃고 새로운 계가 될 것이다
터진 풍선의 계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그 구성 요소들은 놀이동산 계의 일부로 흡수되어 버렸을 것이다
 
시간 이동의 결과 또한 마찬 가지다
오늘의 우주는 내가 속해 있던 좌표만큼의 무언가를 잃어 쭈그러들 것이고
어제의 우주는 폭발하여 시간 좌표를 초월한 어떤 더 큰 계에 뿌려져 버렸을 것이다
그럼 어제의 우주는 더 이상 연속된 시간 좌표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어제의 우주는 밀도가 정상보다 더 높아졌다
(f(1)의 치역과 f(2)의 치역이 서로 다르다면 두 함수가 같은 함수라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상 실험을 한 것 자체가 우주의 연속성을 무시한 것이지만
그래도 우주의 연속성을 조금이나마 존중한다면,
이제 우리의 우주는 시간축을 기준으로 둘로 조각나, 완전히 독립된 두 계로만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의 나는 시간을 잃고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고
어제의 나는 몇날밤을 자도 오늘에 다다를 수 없다
차라리 도서관에 연체료를 내는 쪽을 택할 걸 그랬다
 
별로 과학적이지 않은 상상 실험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얻었다
우주에는 보존 법칙과 연속성이 여전히 지배적이고
우리는 하다 못해 질량보존의 법칙 하나 마저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잘 연구해보자
우리가 과거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나의 딸이 놀러 와서 나를 만나고 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결혼을 할지 독신으로 혼자 살지를 쉽게 결정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덧붙여,
과학적 단위가 아니더라도 상상 실험은 생각보다 매우 재밌다
나 같은 사람은 교사가 될 수 없는 한국적 채용 현실이, 난 참으로 서글프다
난 어려서부터 좀 더 멋드러진 세상을 위해 공부하는 친구들을 키워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은 좀 더 경제적인 세상을 위해 공부할 따름이고
난 완전한 몽상가일 뿐이다,,
 
여러분이 공부는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다 커 버렸다고 느낄지라도
상상 실험을 한 번 해보기 바란다
멋진 이성과 커피를 마시며 슈베르트를 논하는 상상 실험을 해보라
당신이 내일 교양을 추구하는 이상한 성격의 사람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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