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얘기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난 어렸을 때 매우 착한 어린이었다. (심지어 매우.)

숙제도 다 해놓은 다음에 놀러 나가고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이 밤늦게 들어오시면
밥도 차려 먹고 방도 쓸고 닦고 이불도 싹 펴두고
책도 많이 읽고
자기 전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면서 자고
저금도 꼬박꼬박 잘했다.

아아 참으로 바르고 슬기로운 어린이구나.

이런 나는 하나은행이 주거래 은행이었더랬다. (주거래. 심지어 주거래!!)
그 당시에는 합병되기 전의 서울은행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은행에 가서 주섬주섬 잔돈과 통장을 내밀어 입금을 했다.
백원, 이백원씩 저금하는 나를 귀찮아 하지 않았던 은행원 누나는
분명히 좋은 사람이었을 게다.
그 누나의 창구는 나의 주거래 창구였다. (주.거.래)

그런데 어느날.
아마도 슈퍼마켓에 가는 길이었을 게다. (편의점이나 마트 따위가 없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아.마.도.) 점심을 먹으러 가는 은행원 누나와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도 반갑게 생~긋 웃으며 인사를 했고
은행원 누나도 5시 반에 방송하는 어린이 채널의 꿈동산 해바라기 마냥 방긋 웃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총총 걸음으로
콩나물인지 과자인지 모를 무언가를 사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향했음에 틀림없다.

문득 나는 알게되었다.
너무 낯이 익어 당연스레 인사를 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어린이 나는 몹시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한편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은행원 누나가 인사를 받아주는 고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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