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15인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객관식 오지선다에서 보기는 1, 2, 3, 4, 5 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답이 15 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점수를 더 받을까 싶어 답일 것 같은 것을 골라 최선을 다해 찍었다.

하지만 답이 없었기 때문에 점수가 발표된 후엔 어김없이 분쟁이 일었다.

1점으로도 당락이 갈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송을 걸었다.
"1이 맞다."
"2가 맞다."
어떤 답은 수가 많았고 어떤 답은 수가 적었다.
그러나 단지 아무 답이나 적었을 뿐 그안에 정답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주장했다.
"답을 적었으면 부분점수라도 줘야 하지만 아무 답도 적지 않았으면 0점을 줘야 한다."
"답을 적는 것은 수험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15에는 5가 가장 가까우니까 5가 답이다. 그나마 답이 더 아닌 걸 걸러낸 사람이 맞다."
"내가 쓴 답에 점수를 달라. 최소한 부분 점수라도 줘야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틀린 답이라도 좋으니 반드시 답을 써야한다며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답을 쓰지 않은 사람은 점수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있지도 않은 답을 억지로 찾아내려고 짜맞추는 것보다
출제 방식이 틀렸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더 맞다.
(단 한 회의 시험 결과보다 시험 자체의 결함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대다수가 답을 적지 않는다면 문제가 제기되어 언젠가 출제 방식이 바뀔 테지만
안타깝게도 어떻게든 점수를 얻으려 아무 답이라도 적기 때문에
다음 회차에도 시험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출제된다.

어쩔 수 없다.
배려받지 못하는 소수가 되어 나 혼자 감점이 되겠지만
나라도 앞서 나가는 희생자가 되어야지.

보기가 모두 틀렸으므로 답을 적지 않은 것이 정답에 가장 가깝다.
나는 보기 중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답을 적지 않았다.

그러자 모두들 나를 감점시켜 자신의 점수차를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어했다.
"나랑 다른 답을 적어도 좋아. 인정해 줄 수 있어. 하지만 문제는 무조건 풀어야 돼.
어떤 답이든 적은 사람은 점수를 주고 답을 적지 않은 사람은 감점을 해야 마땅해."

그러던지 말던지.

어쨌든 나는 내가 정답에 가장 가까웠다는 걸 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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