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기본 렌즈만 가지고 쓰다 보니 지루해서
어디 렌즈 없나 싶어 찾던 터에
집에 아주 오래된 수동 카메라가 있는 것이 기억나서 뒤져 보았다.

Pentax SPOTMATIC.
득템이다.

정말 오래된 고전 카메라를 발견했다. 1963년 처음 발표된 카메라이다.
스팟 노출계를 가졌다고 해서 SPOTMATIC 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급하게 방식이 바껴 정작 실제로는 평가 측광을 한단다.
당시엔 꽤나 좋은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라
45년이나 지난 지금 쓰기에도 손색이 없고 감이 좋다.
펜탁스가 대단하긴 하구나.
느낌으로 치면 성능이 꽤 괜찮아 보급형 카메라치고는 명품이다.

그러나 난 렌즈만 필요했기 때문에 렌즈를 확인했다.

Super Takuma 50mm f/1:1.4.
후훗. 꽤나 괜찮은 걸 찾았다.
중고로 팔기도 애매한 가격의 렌즈이지만 사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최고의 방사능 렌즈라고 해서 찜찜하긴 하지만 그래도 감이 좋은 렌즈다.
역시나 이것도 방사능의 원흉인 토륨 때문에 렌즈가 노랗게 변했는데
특유의 노란 색감은 로모의 붉은 기운처럼 좋은 느낌을 주니까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
어느 렌즈에게나 다가오는 어둠의 그림자..
역시나 곰팡이가 끼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을 찍으면 이렇게 나오는 게다. 희뿌옇게 안개 낀 듯이.


곰팡이가 좀 심하게 렌즈를 잠식해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아봤는데 삼성사에 가면 2~3만원 정도에 청소를 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가격도 쳐주기 힘든 렌즈에 그만한 비용을 쏟을 수는 없었다.
슈퍼 타쿠마는 M42 x 1 스크류 마운트 렌즈라서
캐논 바디에 쓰기 위해 마운트 링을 사느라 벌써 충분한 비용을 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곰팡이는 청소를 한들 흔적이 없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직접 청소를 하기로!!

사람들이 왠만하면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하는데..
도저히 5천원짜리 물건을 사느라 배송비를 3천원 쓰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분해는 쉽겠지.
결합이 잘 될지가 문제지만..

그런데 분해에도 난관이 있었다. 네임링을 제거하는 것.
양면테입이나 고무장갑을 이용하라고 하는데
너무 오래된 물건이라 그런지 아무리 해도 안됐다.
그래서 화장품 뚜껑에 고무장갑을 씌워 마찰력과 토크를 동시에 이용했다.
물리는 배워둘만한 학문이다. ㅋㅋ.
그렇게 해서 간신히 네임링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고난(계속되는 마찰력과의 싸움)과 함께 분해를 마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랗게 변한 렌즈와 엄청 작아서 불편한 나사, 그리고 이것저것들.


난 렌즈만 닦을 것이라 이 이상은 분해하지 않았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지만
헬리코이드를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말에도 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난 그저 딱 렌즈만 닦고 결합하고 싶었던 게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렌즈를 닦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평생 모르고 살아왔다니
지금까지 난 행운아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흙.)
안경이나 거울, 유리창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렌즈는 아무리 닦아도 얼룩이 지워지질 않는다.

별 수 없다. 우선 물로 씻고 유리 세척제와 스티커 제거제로 박박 닦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분해하지 않은 렌즈의 배면도 안 닦는데..)
때문에 렌즈 코딩이 다 벗겨졌겠지만
사진이 뿌옇게 나오면 어차피 렌즈는 못 쓰는 것이니까..
극세사 천이랑 렌즈 티슈랑 알콜을 좀 비치해 두는 건데..

그래도 다 닦고 나니 당분간은 빛이 제대로 통할 것만 같았다.
아직 곰팡이 흔적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나중에 곰팡이가 많이 퍼져서 다시 분해를 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쓸만해 보였다.

그리고 이번엔 다시 결합.
짐작은 했지만 결합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렌즈 방향은 이미 다 잊었고 어떻게 조절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한 번 조립했더니 조리개가 안 조여지고
다시 분해해서 또 조립했더니 이번엔 촛점이 안 맞는다.
몇 번을 반복한 끝에 제 위치를 찾아서 결합했는데 그게서야 엄청난 난관이 찾아왔다.
(역시 마지막 판 왕은 깨지가 힘든 법이다.)

그 작은 나사들.
핀셋을 사용해도 제대로 끼워넣기가 어렵다.
풀면서 '이걸 어떻게 다시 맞춰 조이지..' 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힘들 줄은 알았어도 하다가 짜증이 날 거라곤 예상 못했다.
결국 십자 나사 베어과 일자 나사 한 개식을 잃어버리고
남은 일자 나사 두 개는 머리가 닳아버려서 다음번엔 못 풀 것만 같다..

그래도 다행히 결합은 마쳤다.
당연히 테스트 샷을 찍어봐야지!!
비슷한 사양의 캐논 렌즈와 비교를 해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0mm f1.8 캐논 렌즈.
사용자 삽입 이미지
50mm f1.4 슈퍼 타쿠마 렌즈.



와 괜찮다. 청소가 제대로 됐구나!!
성공했다. 나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훗.

곰팡이 때문에 뿌옇게 나오던 것은 사라지고
타쿠마 렌즈 특유의 노란빛이 돈다.
왼손은 렌즈캡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초점을 정확히 맞추진 않았지만 그래도 적당히 잘 맞는 것 같고
무한대 초점도 실내라 제대로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대강 맞는 듯하다.

ㅋㅋ 굿.
거의 8시간 넘게 고생을 했지만 결과가 잘 나왔으니 괜찮다.
왠지 타쿠마 렌즈는 필카 느낌이 날 것만 같다. ^^
이제 렌즈 한 개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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