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를 찾아가다가 계림을 보았다.
아 선덕여왕에 나오던 그 계림이란 말인가.
하지만 뭐 크게 볼 것은 없었다. 집이 있고 나무가 있고.
우리는 다시 첨성대를 향해갔다.
첨성대는 그리 멀지 않다. 계림에서 한 오십미터 쯤.

그런데 여긴 자전거 대여소가 있는 모양이다.
가족 단위 관광객은 자전거가 아닌 이상한 자전..마차(?) 같은 것을 타고 다니고
미모의 여학생 관광객이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

허나 우린 경주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기 때문에 자전거를 빌릴 필요가 없다.
그래도 우리의 여행 필수품인 튼튼한 두 다리를 챙겨왔으니깐. ^^
우리는 당당하게 어깨를 쫙 펴고 터덜터덜 걸어서 첨성대까지 갔다.

아앗! 그런데에!! 아니 이게 왠걸!!!
첨성대까지도 돈을 받고 있었다. (5백원이라는 싼 가격이었지만 이건 기분 문제니까.)
이놈의 경주는 어딜가든 입장료다. 첨성대에 입장료가 있을 줄이야.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조금도 친절한 구석이 없잖아.

사진 한장 달랑 찍고 나올건데.. 우리는 결코 5백원을 낼 수 없었다.
고작 5백원 가지고..
그러나 천만에. 하나 둘 샬칵. 끝.
5초에 5백원이니 초당 백원이다. 내 연봉보다 훠어어어얼씬 비싸다. ㅠ.ㅠ

문화재 관리를 위한 입장료면 괜찮은데 이건 명백히 관람료 아닌가.
여긴 100미터에 한번씩은 유적지가 나온다. 관리비라면 그냥 한번에 받지.
잠깐 보고 지날 곳까지 조각조각 끊어서 입장료를 내라니.
여기가 무슨 에버랜드냔 말이지.
한고개 넘었더니 또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인 격이다. 떡에도 한계가 있잖아.
5백원에 타격받을 만큼 굶고 살진 않지만 기분이 좀 상해서 보이콧했다.

그래서 우리는 울타리 바깥쪽에서 사진을 찍으려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철저하고 치밀하고 완벽하게 치사할 수가.
나무를 교묘하게 잘도 길러놔서 전혀 첨성대가 한 화면에 안잡힌다.
완벽하다. 정말 감탄할만큼. 우오오.
돈벌이 말고 문화재 관리에 이만한 정성을 쏟으면 훼손되는 유물이 하나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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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제아무리 애를 써도 이렇게 밖에는 찍을 수 없다.


젝일 꼴랑 5백원가지고. 걍 내고 들어갈까.
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우리가 아니다.
여기서 포기하기엔 우리의 인건비가 벌써 5백원을 넘어섰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은 게다.
결국 여리형은 울타리에 기어올라 사진을 찍는데 성공했다.
(나중엔 부끄러웠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때의 여리형은 김유신만큼 위풍당당했다.)
난 차마 거기까진 못가고 적당히 나무로 가려진 사진을 얻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아아 나의 부족한 용기가 부끄럽다.

대신 첨성대의 옆구리를 찍어왔다.
그 쪽은 울타리가 좀 허술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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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는 전체 모습을 찍을 수 있지만 별로 가치가 없다.
그들도 그것을 알고 울타리를 성심성의껏 치지 않은 게다.
"케이군. 구멍 있는데가 얼굴이잖아. 얼굴이 중요한 건데."
첨성대에도 얼굴이 있다는 걸 그 날 처음 알았다.
결국 난 옆구리밖에 못 찍은거다. -.-

첨성대는 천문대답게 365개의 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여리형과 오면서 365에 관한 얘기를 했었다.
(KTX 잡지의 석빙고 기사도 그렇고. 여튼 이번 여행은 사소한 우연이 많다. ^^)
여리형은 1년이 365일이고 사람 체온이 36.5도라서 신기하다고 했다.
"또 365인 거 없나?" 그러나 그게 쉽게 나올리는 없다. ^^
여튼 평소에도 좀 독창적인 사람이다. 은근히 머리가 좋은 모양.

아아 이제 첨성대도 봤으니 자리를 옮겨야 한다. 어디로 갈까.
이제 남은 건 수많은 능 뿐이다.
어차피 다 똑같이 생긴 무덤이니 일부만 보기로 했다.
그래서 첨성대 바로 앞에 있는 동부사적지대를 슬쩍 둘러보고 천마총으로 향했다.
어차피 하나를 볼 거면 국사책에 나오는 걸 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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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능은 한개만 보면 다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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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근데 저쪽에 왠 마을 같은게 보인다. 가보자.


우리가 간 곳은 능이 잔뜩있는 곳이었다. 대릉원.
능 패키지라고 보면 된다. 그래 이렇게 묶어서 입장료를 한번에 받아야지.
능은 뭐 더 볼 생각이 없지만 바로 이곳에 천마총이 있단다. 오오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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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는 3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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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복장을 갖춘 누나가 있는 건 좋은데
저건 뭘까. 이건 아니잖아.. ㅠ.ㅠ


우린 천마총을 볼 것이기 때문에 다른 길은 무시하고 천마총으로 직행했다.
천마총은 대릉원 후문쪽에 있기 때문에 한참을 걸어야했다. 오늘 잠 잘 오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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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들락거리는 무덤. 무덤 주인은 손님 맞느라 얼마나 피곤할까..


천마총은 꽤나 볼만했다. (물론 내용을 알고 봐야 재밌다.)
넓진 않았지만 국사책에 있는 그대로다. 교과서를 믿어도 된다니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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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 때문에 천마총이다. 천마도장니.
회화가 들어간 신라시대의 유일한 유물이라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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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를 쓰면 안되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는 못찍었다.
그래도 분명히 말이 보인다. 오오. (근데 기린이라는 주장도 있단다.)


천마도도 봤겠다 이제 경주 기행을 마치기로 했다.
웬만한건 다 봤다. 미련없이 경주를 뜨자. 우린 역을 찾아 움직였다.
대릉원 후문으로 나왔는데 여긴 분명 시내다. 근데 어디로 가지.

우선 무턱대고 걸었다.
여리형이 왠지 길을 아는 것 같았기 때문에 난 여리형을 믿고 따라갔다.
왼쪽으로 10분쯤 걷다가 위로 한 5분쯤 걷고 다시 오른쪽으로 10분쯤 걸었다.
가만.. 뭔가 이상한데. 그럼 그냥 위로 5분 올라온거잖아.
이런. 알고보니 우린 바로 근처로 가기 위해 한참을 돈 게다. 어휴 서울 촌놈들.

애매하게 방향을 찾았을 때쯤 우린 경주의 아주머니께 길을 물었다. (좀 일찍 물어볼 걸..)
아주머니는 경주에서 만났던 (직원의 형태를 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매우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셨다.
"경주역은 어디로 가면 되요?" (잠시 의문. 여리형은 왜 경상도 사투리를 못 하는가.)
"요리로 쭉 올라가예. 5분? 10분? 젊은 사람이니까 금방 갈낍니더."
오오 좋았어! 바로 이기라~

그런데 어딘가 좀 허하다.
아하 그렇지 배가 허하다. 밥 때가 훨씬 지났으니 당연히 출출했다.
"형 저녁은 어쩌죠?"
"지나가다 눈에 띄는 거 있으면 들어가서 먹자."
어쨌든 지금 당장은 뭔가 마땅히 먹을 게 없었다.

좀 걸으니 이제 점점 서울에서 보던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호 역주변이라 번화가구나. 맥도날드도 있고. 오오 그래 낯익은 게 계속 나온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와우~!

버거킹도 있고 편의점도 있고. 편의점.. 편의점. 점의점? 어? 어어? 그런데!
어헉. 그런데 이게 뭔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번엔 서울에는 없는게 나타났다.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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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인가 분식집인가. (사진은 클릭하면 커진다.)


어헐. 세븐순대븐이 나타났다.
간판은 편의점인데 왼쪽 절반은 분식집이다.
이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희안한 가게는 처음 본다.
우린 여기서 오뎅 네개를 먹었다.
저녁으론 턱없이 부족했지만 우린 배를 비워둬야 했다. 따로 먹을 게 있었으므로. ㅋ

신기한 분의점... 또는 편식집? 아아..
뭐라 불러도 이상한 가게를 나와서 여비를 마련하러 갔다. 역주변에는 은행이 있었으므로.
여리형은 우리은행, 난 하나은행으로 흩어져 각개 격파했다.
내가 줄이 너무 길어 좀 늦게 나왔더니 여리형이 걱정스럽게 다가왔다.
내 앞에 나간 사람이 좀 불량한 몰골의 사람이었는데 막 뛰어나가더란다.
"어휴 형 내가 힘은 약해도 깡이 있잖아. 걱정말아요." (사실은 돈이 없잖아.)

드디어 역을 찾은 우리는 부산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기차 시간에 여유가 있어 막간을 이용해 반드시 해야할 일을 하러 갔다.
바로 경주빵을 먹는 것이다. 경주에 발을 들일 때부터 하고자 했던 일.
더 먹고 싶은 오뎅을 참으며 준비해온 과업.
경.주.빵.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수많은 원조 경주빵집 중 한군데를 골라 들어가 경주빵을 샀는데, 아싸 재수~!!
카드를 들고 주춤주춤했더니 현금으로 계산하면 보리빵을 몇개 준단다. ㅋㅋ 물론 현금이지요~.
"케이군 앞으로 카드 자주 써먹자. ㅋㅋ"
(그러나 그땐 매우 신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보리빵은 원래 주는 것 같다. 에이씨잉 당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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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명물 호도과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차역의 풍운아.
그 유명한 경주빵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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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덤으로 (혹은 낚여서) 받은 찰보리빵.


이렇게 우린 경주빵과 찰보리빵을 저녁으로 먹었다.
경주빵은 팥앙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빵이다. 팥빵?
만쥬랑 비슷하다. 팥이 통통 오동통하게 잘 들어있다.
찰보리빵은 마찬가지로 팥이 들었지만 빵쪽에 더 느낌이 강하다.
보리의 쫀득한 느낌이 느껴지는데 팥이 들은 팬케잌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경주빵은 생각보다 양이 많아 배가 부르다.
성인 남자 둘이 저녁으로 먹고도 배가 충분히 차서 몇개 남겼다.

아 배도 부르고~ 이제 또 다른 여행지로 가는구나. 설렌다.
으쌰으쌰 하며 우린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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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역. 우린 부산의 명동인 서면에 내린다.


안녕 경주야~ 기다려라 부산아! ㅋㅋ

아아 부산엔 뭐가 있을까~ 둑은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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