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역에 내려 부슬부슬 내리는 밤비를 맞으며 서면을 돌아다녔다. 방을 잡기 위해서.
여리형은 귀신 같이 모텔을 찾아냈다.
나이트클럽의 북적대는 소리. 그 뒷쪽으로 모텔이 떡하니 있었다.

남자 둘이 들어가기 영 뻘쭘하지만..
우린 오늘 옷도 같은 걸로 입고 있는데. 젝일.
게다가 내일 입을 옷도 같은 옷인데. 젝2.

어쨌든 우린 저렴하게 놀기로 했다. 방값은 쌀수록 좋다.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

그리고..

푸득두르륵. 빗소리에 잠이 깨었다.
어어. 날이 밝다.
열시까지 잤다. 여행 중엔 시간이 아까운데..

비..
앗 비라고?

젝일. 낭패다.
하지만 우린 아랑곳 않고 태종대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는 동안 비가 그쳐다오.

버스에 타고 태종대로 가고 있는 길.
막간에 가벼운 얘기나 하나 할까.

버스를 타기 전에는 비옷을 사기 위해 한참을 돌았는데
그 때 여리형은 경주빵 종이 가방을 머리에 쓰고 있었고
난 노트북 가방의 방수천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부산에선 이렇게 다니면 바보 같이 보인다.
아니다. 사실 어느 동네에서도 바보 같이 보인다. 영락없는 바보 형제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여리형이 부산에 아는 사람이 있다며 멋쟁이처럼 전화를 걸었다.
우와 부산 안내도 받고 재미나게 놀겠구나.
그러나 웬걸. 부모님이 2단 콤보로 전화를 해왔다.
애가 많이 아프니까 간다고 하면 말리라고..
여리형은 부산에 있는 내내 이 일을 말하며 가슴 아파했다.

와 얘기를 두개나 했는데 아직도 도착안했네. 멀구나. 부산은 넓다.
여기는 해양대학교 앞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아니. 이제 다 왔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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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다니.. 흙.


부산의 첫 코스. 태종대.
이곳은 여리형이 미칠듯이 설레하며 가고 싶어한 곳이다. 자살바위를 보고 싶기 때문.
아 나도 기대된다.

날씨가 우리를 방해할까봐 비옷부터 샀다.
다행히 태종대 앞에 초등학교 앞처럼 문구점이 있었다.
여리형이 신나서 쫓아들어가 비옷을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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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형이 좋아하는 하얀 비옷.


태종대는 걸어 올라가려면 매우 멀기 때문에 두루미인지 다람이인지 하는 것을 타야 한다.
놀이공원의 코끼리 열차 같은 것인데 난 이것을 왜 코끼리 열차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비가 와서 이 코끼리를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헉.
우린 어제도 경주에서 엄청 걸었는데!!

낭패다 싶었지만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래서 포기 않고 계속 앞에서 얼쩡거렸더랬다.
그들이 없었다면 쉽게 포기하고 그냥 걸어 올라갔을 게다. 휴우.
하지만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했던가.
2시부터 운행을 한다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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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다누비구나. 다 누비고 다녀서 다누비인가 보다.


허나 곤란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었다.
표는 출발 10분 전부터 판단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
아침도 못 먹은 우린 당연히 밥을 먹기로 했다.
교묘하게 매표소 앞에 식당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표는 미리 안판다.
고의적인 처사다.

분식도 팔고 여러가지 길거리 음식도 팔고 애들 좋아하는 불량식품도 파는데
(정리하자면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음식을 판다.)
우린 우동과 국수를 먹기로 했다. 분식도 겸업하니까 김밥도 주문했다.
그런데 여긴 참 뭐랄까. 뭐라고 해야 좋을까.
재료나 조리법이나 만들어진 음식의 결과물이나 어디로 봐도 웰빙은 전혀 아닌데
이상하게 조미료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아니. 분명히 조미료가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다. 어쩌면 심지어 소금도..
그러니까.. 여리형의 우동과  내 국수가 완벽하게 똑같은 맛이 난다.
그것도 극도로 웰빙스런 맛. 어딘지 풀무원 연두부의 국물 맛이랑 비슷한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오니 비는 그친것 같은데 날씨가 여전히 묘하다.
왠지 구름속에 서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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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난 것 같진 않은데 연기가 난다.


도대체 저건 뭘까.
저 산 위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름과는 좀 다르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바닥에서도 저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중이다.
나도 잘 모르겠으므로 여리형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비가 증발하면서 땅에서 수증기가 올라가는 것이다.
근데 그냥 구름 같다.

그러나 대자연의 신비를 경탄하기에 나는 너무나 사람이다. 젝일.
지금 닥친 불편함이 더 중한 사람이었던 게다.
아아 다누비. 다누비.

정말 곤란한 시스템은 이제 그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했는데..
밥을 먹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백명쯤 몰려와 먼저 표를 사고 줄을 서버린 것이다.
좋다. 오십여명의 초글링쯤이야. 먼저 보내주겠어.
그러나 조금후 방금 올라간 아이들보다 나이가 한 9배쯤 많은 소대 단위 집단이 나타났다.
음. 노인분들과 같이 올라가게 생겼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우리가 탄 다누비는 매우 소란스러웠다.
듣는 사람이 없어도 고함을 지르시는 분들 몇명과
끊임없이 계속 말을 하시는 분들은 사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움직이는 다누비에서 고속버스 노래방을 재현하시는 분들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다누비 차장 누나의 말을 안듣는다는 것이다.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누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노인대학 소대의 2개 분대가 중간 지점에서 내렸는데
그중 한분이 차가 출발하고 있을 때 다시 타려고 매달린 것이다.
차장 누나는 엄청 큰 소리로 버럭버럭 화를 냈다.
"아저씨! 큰일나요! 아으~ 내가 미쳐!"
난 여자들이 쓰는 경상도 사투리를 매우 좋아하는데도 그 소리만큼은 전혀 좋지 않았다.
어우 무서워. 정말 진심으로 엄청 화났다.
그래서 난 기념으로 차장 누나 사진을 찍어오려던 계획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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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겨우 찍은 게 이거다.


하지만 그 다누비 안에서 우린 세명의 초글링과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여리형과 초글링이 친해진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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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금새 친구가 되었다.


난 시크하고 도도한 꼬마 숙녀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 친구는 사진을 찍어주지 않았다. ^^
여리형의 베프가 된 친구는 어딘지 여리형과 닮았다. 그러나 여리형에게 깝쳤다고 알려져있다.
(저 친구가 여리형에게 까불거리자 시크하고 도도한 꼬마 숙녀가 깝치지 말라고 했다. ㅋㅋ)
좀 더 어른스러운 5학년 친구도 있었는데 어쩐지 여리형과 친해지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저 발랄한 친구에 밀려 여리형에게 접근하지 못한 것 같다.
여리형은 아이들의 친구다.
여리형은 그게 자신이 도우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 얼마간은 설득력이 있다.
ㅋㅋ 어쨌든 멋지다. 멋진 형이야.

초글링 부대는 태종대에서 계속 우리와 함게 움직였다.
와아 길 막힌다.

아 난 자살바위가 젤 기대된다.
얼른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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